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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안보는 예산이 문제 아니라는 美 [윤홍우의 워싱턴24시]

반도체법 공화당 지지로 의회 통과

미국 내 지나친 설비투자 회의론에도

'국가 안보' 공감대로 여야 한목소리

천문학적 자금 투입해 中위협 대응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2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반도체 및 과학법 법 등록식을 갖고 있다./EPA연합뉴스




“저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격언을 따르겠습니다. 안보는 예산의 문제가 아닙니다.” (토드 영 공화당 상원의원)

미국 의회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정책인 반도체 산업 육성 법안이 통과된 것은 이 법안을 지지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중에서도 토드 영 공화당 상원의원은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함께 이 법안을 구상한 핵심 인사 중 하나다. 그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최근 대담에서 ‘이 법안이 보수가 강조해온 자유 시장 질서에 반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이것은 국가 안보에 관한 투자”라고 대답했다.

총 520억 달러 규모의 막대한 직접 보조금에 25%에 달하는 투자세액공제 혜택까지 더해진 반도체 산업 육성 법안이 미국 상·하원을 통과하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법안 통과를 장기간 지연시킨 미국 의회 내부의 당파적 갈등은 차치하고라도 근본적으로 이 법안이 과연 이미 미국 땅을 떠난 반도체 제조업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인지, 또 지나친 대기업 특혜는 아닌 것인지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법안에 반대해온 릭 스콧 민주당 상원의원이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징그럽게 기업에 혜택을 주는 법안”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올 4월 브루킹스연구소가 주최한 대담에 출연한 모리스 창 대만 TSMC 창업주의 발언도 미국 정치권의 고민을 깊게 했다. 당시 창 창업주는 미국이 자국 내에서 반도체 제조 공장을 다시 지으려는 시도를 두고 “값비싼 헛수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아무리 보조금을 통해 반도체 제조업을 다시 육성하려 해도 높은 비용과 인력 부족 문제 등을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할 것이란 얘기다.



미국 내부에서도 회의론은 적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반도체 부족 사태가 완화하고 있는 시장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팬데믹이 종료되며 PC와 스마트폰 수요가 둔화하기 시작한 시점에 반도체 공장에 대한 지나친 투자가 설비 과잉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미 설계와 장비 시장에서 패권을 쥔 마당에 반도체 양산을 직접 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반도체 기업가 출신인 티제이 로저스는 WSJ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미국은 이미 반도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지배적”이라면서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부유한 반도체 기업에 납세자의 돈을 줄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모든 우려 속에서도 미국 의회가 이 법안을 초당적으로 통과시킨 데는 점점 더 실존적으로 변해가는 중국의 위협에 맞서야 한다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실제 이 법안이 통과되기 몇 주 전 상원의원들을 상대로 진행된 바이든 행정부의 기밀 브리핑에서는 미국 국방 분야에서 구입한 칩의 98%가 아시아 지역에서 만들어진다는 구체적인 수치들이 보고됐다. 악시오스는 “지나 러몬드 상무장관과 국방 및 정보 당국자들의 브리핑을 받은 몇몇 상원의원들은 겁에 질렸다”고 전했다.

워싱턴DC에서 만난 반도체 업계의 한 인사도 “미국은 이 문제를 경제 논리를 떠나 보다 큰 그림에서 바라본다”면서 “중국 내에서는 대만 TSMC를 국유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년 내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데 중국에서 불과 110마일 떨어진 대만에서 대부분의 반도체를 수급하는 현 산업 구조가 국가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라는 것에 미국 정치권의 초당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의 이 같은 각성은 앞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반도체 산업을 사실상 ‘국방 산업’처럼 지원한다면 여기에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할 공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도체 제조 시장에서 미국과 일본이 빠진 자리를 차지해 지금의 위상을 구축한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위기의식은 물론, 아직도 ‘대기업 지원은 특혜’라는 도그마에 갇혀 있는 우리 정치권의 각성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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