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내 7%대의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고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의 경제 부국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의 시작은 화려했다. 녹색 성장부터 대운하, 해외 자원 개발 등 논쟁적이지만 굵직한 경제 이슈로 지지층을 이끌었다. 대선 때 48.7%의 득표율을 얻었지만 취임 첫 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76.0%(리얼미터)로 껑충 뛰었다. 이명박 정부의 질주는 거침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취임 두 달 즈음 긍정 평가 50%가 깨지더니 내리막길을 이어갔다. 10주째 조사에서는 35.1%까지 추락했다. 인사 실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을 반대하는 촛불집회, 광우병 파동 등이 맞물린 여파였다. 하락의 속도도 가팔랐다. 이 전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집회를 바라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는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도 한다. 정권 초의 위기감이 극에 달했다는 얘기다.
그래도 진정되지 않았다. 급기야 취임 100일이 갓 넘은 이명박 정권은 인적 쇄신 카드까지 꺼냈다. 2008년 6월 초 청와대 전 수석들이 일괄 사표를 냈고 이 전 대통령은 6월 20일 취임 117일 만에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 7명을 전월 물갈이하는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극단적 조치는 효과를 발휘했다. 16.9%(리얼미터 기준)까지 떨어졌던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을 8월 35.2%까지 반등시켰다.
출범 두 달을 넘어선 윤석열 정부의 사정 역시 이명박 정부와 다르지 않다. 상황은 더 심각하다는 평가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파동, 촛불집회 등의 외적 요소가 지지율 하락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지만 윤석열 정부는 장관급 후보자들의 ‘인사 검증 실패’에 더해 지인 자녀들이 대통령실 직원이 된 ‘사적 채용’ 논란 등 내부적 요소가 크다는 것이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의 행보를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도 많다.
그렇다 보니 지지율 하락의 기울기는 더 가파르고 속도도 빠르다. 리얼미터가 11~15일 전국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해 18일 내놓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0주차 국정 수행 지지도는 직전 주보다 3.6%포인트 낮은 33.4%로 집계됐다. 부정 평가는 6.3%포인트가 높아져 63.3%를 기록해 조사 이후 처음으로 60%를 돌파했다. 6월 4주차에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선 데드크로스가 일어난 뒤 3주 연속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15~16일 조사해 이날 발표한 지지율도 비슷했다. 긍정 평가는 32%, 부정 평가는 63.7%로 긍정과 부정의 격차가 거의 두 배인 ‘더블스코어’를 기록했다.
취임 10주차 때 긍정 평가 35.1%, 부정 평가 55.1%(리얼미터 기준)를 보였던 이명박 정부보다 더 좋지 않은 성적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윤석열 정부도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긍정 평가가 20%대까지 떨어질 경우 더 이상 손을 쓸 방법을 찾기 힘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 정부는 고물가와 고금리, 고유가의 ‘3고(高)’ 위기 속에서 연이어 터진 인사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대로라면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전 청와대) 인사 쇄신이라는 독배를 들어야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역대 대통령들 대부분이 취임 초기 지지율 하락 국면을 인적 쇄신으로 돌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여당은 인사 논란을 야당의 공격으로 해석하고 있어 국면 전환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인적 쇄신 없이 지지율 추락 국면을 지나면 거대 야당과의 충돌 범위가 더 커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다. 노 전 대통령은 인사 논란 등으로 지지율이 추락하자 2003년 10월 10일 기자회견에서 “국민들로부터 재신임을 받겠다”며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다. 재신임 발언은 정치권에서 일파만파로 커졌고 결국 야당의 탄핵소추안 처리까지 얽히는 정치적 내전 상황으로 갔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보다 심각한 상황인데 대통령은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참모진이 설득해야 하는데 그만한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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