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발표됐던 미국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근원물가지수 상승률은 예상대로 조금씩 낮아지고 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헤드라인 물가는 잡히지 않았다. 3월 이후 물가 고점은 지났다는 낙관적 인식은 완전히 폐기됐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FOMC를 앞둔 일주일간의 블랙아웃 기간 중에 미시간대 기대인플레이션 서베이를 확인한 후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75bp 인상)’을 단행하는 쪽으로 변심했다.
6월 금리 결정을 앞두고 빅스텝(50bp)을 시사해왔던 연준은 자이언트스텝을 밟아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다수의 언론에 이를 의도적으로 흘려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고자 한 것으로 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실제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6월 FOMC 기자회견에서도 이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취지의 발언을 남겼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 5월 취임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빅스텝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원론적인 언급이며 다수의 한은 집행부는 베이비스텝(25bp)이 적절하다고 평가해왔다. 그러나 FOMC 직후 총재는 외환·채권시장의 반응을 보고 빅스텝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고 최근 물가 설명회에서 물가가 잡힐 때까지 긴축을 지속한다는 방침을 드러냈다. 6~8월 중 소비자물가지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이 6%를 웃돌 것으로 보이고 원화 약세 추이가 이어짐에 따라 7월 금통위에서 빅스텝 가능성은 높아졌다.
이런 점은 그간 중앙은행이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결정을 피해왔던 전례와는 다르다. 공급 측면의 영향이 큰 현재의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중앙은행의 긴축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최근 중앙은행은 수요를 어느 정도 파괴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시하겠다는 점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기준금리는 중립금리를 웃도는 수준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립금리란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을 유지하도록 하는 이론적인 금리 수준을 말한다. 따라서 중립금리는 경제 상황에 따라 달라지게 되고, 특정 수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잠재성장률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결국 이번 사이클에서 중앙은행이 경기에 비해 다소 과도한 긴축을 고수할 경우 일정 수준의 둔화는 불가피하다. 고물가·고금리 환경은 △소비 둔화 △투자 지연 △경제 심리 위축 등의 경로를 통해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만 아직까지는 경제지표상 기술적 침체 이상의 신호는 부족하며 금융기관의 건전성 규제가 강화돼왔기 때문에 과거 글로벌 위기 상황처럼 시스템적 리스크 또는 신용경색이 되풀이 될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점은 이번 긴축 사이클에서 중앙은행은 과거와 달리 어느 정도 수요 파괴를 각오할 것이고 자산시장에서 작동해온 ‘연준 풋’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 제어를 위해 중립 수준 이상까지 긴축적으로 이동할 것이며 경기 흐름에 따라 이르면 2023년 하반기 또는 2024년에는 과거 연준의 보험성 인하(1995·1998·2019년)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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