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프점프 ‘커튼콜’은…
유명 작가 스티븐 킹은 부고 기사를 쇼가 끝난 뒤 배우들이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인사하는 ‘커튼콜’에 비유했습니다. 부고 기사는 ‘죽음’이 계기가 되지만 ‘삶’을 조명하는 글입니다. 라이프점프의 ‘커튼콜’은 우리 곁을 떠나간 사람들을 추억하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를 되밟아보는 코너입니다.
‘흰 눈썹’으로 유명한 한국 경제학계 거목이자 정치계 원로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향년 94로 별세했다. 조 전 부총리는 경제와 정치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20여 년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케인즈 경제학을 다룬 최초의 교과서인 ‘경제학원론’을 펴낸 게 대표적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경제학의 대표적인 교과서로 읽힌다. 정치에 입문한 뒤에는 민선 1기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돼 아스팔트로 덮여있던 여의도 광장을 지금의 공원으로 조성했다.
조 전 부총리는 192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경기중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전문부를 졸업했다. 이후 강릉농업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입대해 통역 장교로 근무했다. 전역 후 미국으로 가 UC버클리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귀국 후에는 1968년부터 20여년 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그런 그가 경제 관료의 길을 걷게 된 건 1988년이다. 육사 교관으로 있을 당시 인연을 맺은 노태우전 대통령의 권유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게 된 것.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다 사표를 내 재직기간이 길지 않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당에 입당해 34년 만에 부활된 지방자치에서 민선 1기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됐다. 당시 길고 흰 눈썹과 소신 행보로 ‘서울 포청천’이란 별명을 얻었다.
조 전 부총리는 시장 임기를 10개월여 남겨두고 통합민주당 대선 후보로 대권에 도전했지만,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단일화하면서 대권 도전 대신 초대 한나라당 총재를 맡았다. 한나라당은 그가 직접 지은 당명이다. 2000년 16대 총선 때 민주국민당 대표로 총선을 지휘했지만 선거 참패 후 정계 은퇴했다.
이후 서울대·명지대 명예교수,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등을 맡아오다 최근 노환으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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