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생산·소비·투자가 전월보다 일제히 줄면서 ‘R(경기 후퇴)의 공포’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년 2개월 만에 ‘트리플 감소’를 기록한 데다 선행지수도 10개월 연속 하락해 장기 경기 침체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거시 지표에 온통 비상등이 켜진 가운데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주력 산업마저 위기 징후를 보이고 있다.
스마트폰에 이어 핵심 수출 품목인 자동차 분야까지 중국의 맹추격으로 ‘레드오션(치열한 경쟁 시장)’이 됐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올 들어 4월까지 전기차 판매 상위 10위 중 9곳이 중국 토종 브랜드였다. 중국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도 현대차·기아의 점유율(1분기)은 1.6%에 그쳤다.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부품 업체들의 경쟁력은 여전히 열악하다. 국내 9300여 개 자동차 부품사 중 미래차 관련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2.3%(213개)에 불과하다.
전통 블루오션 시장들이 줄줄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기업들의 수익성도 악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를 제외한 스마트폰, TV·가전 등 다른 사업부의 올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효자 산업이었던 디스플레이·배터리는 이미 중국에 시장을 내준 것도 모자라 지속 가능성을 우려해야 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씨티그룹이 보고서를 통해 한국 주력 배터리 업체의 목표 주가를 반토막 내면서 해당 업체의 주가가 급락했다. 우리 업체의 국내 노트북 시장 점유율은 80%를 넘었다가 대만 업체에 밀려 50%대로 주저앉았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질수록 주력 기업의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민간 주도 경제’를 외치는 윤석열 정부에서 주력 기업은 성장의 엔진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신산업을 키우지 못한 터에 전통 주력 산업마저 레드오션의 함정에 빠져 경쟁력을 잃는다면 우리 경제는 순식간에 벼랑으로 몰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절실한 것은 ‘초격차 기술’이다. 압도적 기술력을 유지하려면 기업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범정부 차원의 발 빠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어렵고 복잡한 규제 철폐에는 직접 나서겠다”고 말했지만 역대 정부처럼 ‘말의 성찬’에 머무를 경우 기업들이 밝힌 ‘1000조 원 투자’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정부가 인재·기술 개발을 위해 규제·노동·세제 개혁 등 전방위 총력전을 편다면 신산업을 자연스럽게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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