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때 흔히 재무제표상 나타난 수치를 보게 된다. 단기의 기업 경영 성과를 측정할 때 재무적 요소 외에 달리 기준이 될 만한 지표가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재무제표상의 수치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보장할까. 답은 그렇지 않다. 현재의 재무적 수치가 아무리 좋더라도 기업이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고객의 신뢰를 잃거나, 주주가치를 훼손할 경우 소비자와 사회로부터 외면받아 시장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장기적 기업 가치 제고에 비재무적 요소가 중요한 이유다.
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화두다. 기업마다 ESG 전담 부서를 만들고 있다.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ESG 경영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ESG란 환경·사회·지배구조의 첫 영문 글자를 딴 것으로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 비재무적 핵심 요소를 의미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5월 ESG 경영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의 63%가 제품 구매 시 기업의 ESG 활동을 고려하고 70%가 ESG 활동에 부정적인 기업의 제품을 의도적으로 구매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비재무적 요소인 ESG가 기업들의 매출을 좌우하고 투자 유치와 자본 조달 비용 등의 재무적 성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제 ESG 경영은 기업의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한 필수품이 됐다.
ESG 경영 성과를 평가하는 요소와 가중치들은 평가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주요 평가 요소들은 엇비슷하다. 환경 보존, 기후변화 대응, 폐기물 재활용 등은 환경 평가의 요소다. 또 남녀 차별 방지, 노동자 인권 보장, 공정 경쟁 보호 등은 사회 평가의 요소이고 소수 주주권 강화, 투명한 의사 결정, 컴플라이언스 도입 등은 지배구조 평가의 요소다. 이 모든 것들은 사회적 규범인 법을 지킬 때 달성 가능하다. ESG 경영이 법을 지키는 준법 경영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다. ESG 경영의 핵심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규범을 지키는 데 최고경영자(CEO)가 최우선 관심을 가지고 실천해나가는 것이다. 모든 임직원들이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업에 내재화할 때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
ESG 준법 경영과 유사한 제도로 2001년 도입된 공정거래 자율 준수 프로그램(CP)이 있다. CP는 공정거래 관련 법규 준수를 위해 기업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내부 준법 시스템이다. 법 위반 사전 예방 기능뿐 아니라 소비자 보호, 공정 경쟁, 상생 등 ESG 경영의 핵심 요소들과 상당 부분 겹쳐 있다. 그동안 기업들은 비용 대비 효과 차원에서 CP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CP를 단기적이고 재무적 차원의 비용으로 보지 말고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비재무적 ESG 경영 관점의 투자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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