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7일 정부 출범 뒤에 정부 조직 개편안을 만들기로 전격 결정한 것은 물가 급등 등 민생 현안을 챙기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의 여성가족부 폐지 등 주요 조직 개편 내용에 대한 반대가 예고된 상황에서 갈등의 여지를 없앤 것이다. 인사청문회는 물론이고 코로나19 지원, 부동산 문제 등 민생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거대 야당인 민주당과 조직 개편으로 각을 세우는 것은 윤석열 정부 시작부터 삐걱댈 수 있다. 윤 당선인 측은 추후 조직 개편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등 조직 개편을 협치의 고리로 삼겠다는 의도도 드러냈다.
윤 당선인 측은 5월 10일 0시 내각 인선이 완료된 상태에서 업무에 돌입한다는 게 목표다. 조직 개편을 추진할 경우 이 같은 목표 달성이 불투명하다.
역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조직 개편을 추진하다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조직 개편안에 맞춰 내각을 인선했다가 정부 출범 뒤에도 장관이 임명되지 못하는 등 ‘행정 공백’에 직면했다. 당시 박근혜 인수위는 출범 41일 전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정부 출범 25일 뒤 국회에서 처리됐다.
윤 당선인 측은 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여파로 물가 상승률이 4%대로 올라선 상황에서 조직 개편으로 국정에 발목을 잡힐 경우 ‘일 잘하는 정부’라는 기치가 퇴색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조짐을 보이는 데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 수도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정부 출범 초기에 이 같은 민생 문제에 대해 속도감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국정 운영 지지도 하락은 물론이고 지방선거 대패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조직 개편의 키를 잡았던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 추경호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는 현상이고 생활 민생 물가가 굉장히 불안하고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어려움이 경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인수위 기간 중에 정부 조직 개편 문제가 지나치게 논란이 되면 당면 민생 현안 등 국정을 챙기는 데 오히려 동력이 굉장히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 측은 조직 개편 추진 연기를 발표하며 추후 민주당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하며 진행하겠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여가부 폐지 등 민주당이 반대 의견을 강하게 개진하는 사안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하며 함께 조직 개편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조직을 개편하는 관행을 문제로 지적한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에 공감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추 의원은 “(박 대표가) 30년 내다보고 여야가 합의해서 정부조직법을 만드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며 “정당 밖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가면서 조직 개편을 언제 어떤 규모와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의견을 수렴하고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인수위는 조직 개편 연기가 민주당과의 협치를 위한 수순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국회 인사청문회부터 코로나 피해 지원을 위한 2차 추경 등에 민주당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공개 구애한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야당과 이 문제 때문에 협치 정신이 흐트러지거나 국정 운영 차질로 국민들이 걱정하는 일이 없게 하자는 당선인의 강한 의지와 철학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인수위는 현 정부조직법에 근거해 18개 부처 장관을 임명할 계획이다. 부처 폐지가 확정적인 여가부 장관도 임명한다. 여가부 장관은 조직을 운영하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편 방안을 마련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설명이다. 조직 개편은 이후 공청회를 통한 국민·전문가 여론 수렴과 야당 협의 등을 거쳐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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