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기업의 부채를 더한 민간 신용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4540조 원까지 불어났다. 1975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로 1년 전에 비해 409조 원이나 급증했다. 11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10.0%)이자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20.8%에 이르는 규모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빚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자영업자 가운데 ‘적자 가구’가 78만 가구로 이들의 금융 부채는 177조 원을 넘는다. 이 중 27만 가구는 유동성 자산으로 적자를 1년도 견딜 수 없는 ‘유동성 위험 가구’다. 정부 지원으로 생존하고 있지만 상환이 힘든 부실 대출이다.
민간이 빚의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동안 대출해준 금융회사들은 ‘돈 파티’를 벌이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올 1월 은행의 예대금리차는 잔액 기준 2.24%포인트로 2년 6개월 만에 최대로 벌어졌다.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의 지난해 이자 이익은 24조 원으로 1년 새 12%나 늘었다. 얌체 영업은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기승을 부리고 있다. 4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고정 금리는 5%를 넘었는데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1%대에 머물러 있다.
오죽하면 정치권이 과도한 이자 따먹기를 질타하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예대금리차 주기적 공시 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겠는가. 말이 ‘공시’이지 당국은 이를 토대로 금융사의 금리 결정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려 들 게 뻔하다. 금융사 스스로 관치 금융을 불러오게 된다. 은행들이 자산 운용 실력으로 이익을 올리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고 이는 금융 산업 발전의 척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산을 굴리는 능력은 그대로인데 ‘천수답 경영’으로 코로나19 후폭풍과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는 고객의 숨통을 죈다면 사회적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자영업자를 위해 50조 원의 세금으로 한 곳당 1000만 원을 지원해봤자 대출이자로 빼앗기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질 판이다. 은행들은 지금이라도 합리적 예대마진 산정 가액을 스스로 찾아보고 고통 분담에 나서야 한다. 과거 위기 때 천문학적 공적 자금을 받아 살아났다면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혈세를 낸 국민에 대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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