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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파친코' 윤여정·진하가 공감한 이방인의 삶

'파친코' 윤여정, 진하 / 사진=애플TV+ 제공




'파친코'에는 일제강점기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낯선 곳에 뿌리를 내려야 했던 이민자의 삶이 담겨 있다. 차별받고, 멸시 당하면서도 꿋꿋이 살아야 했던 교포들의 회한을 배우 윤여정과 진하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가슴에 깊이 새겼다. 이들의 공감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내 가족, 내 사람들이 겪었던 이방인의 고통을 드디어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이다.

윤여정과 진하가 할머니와 손자로 호흡을 맞춘 애플TV+ 새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극본 수 휴/연출 코노나다 저스틴 전)는 금지된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 승리와 심판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연대기를 그린다. 어머니와 딸, 연인, 아버지, 할머니, 갱스터 그리고 사채업자들이 등장하는 작품은 서로 다른 세 시대를 살아가는 선자(전유나 김민하 윤여정)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1915년 영도의 허름한 하숙집에서부터 1989년 화려함으로 가득한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윤여정은 격정의 일제강점기를 겪다가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이주한 노년의 선자를, 진하는 야망 있는 젊은 은행 임원인 재일교포 3세 솔로몬으로 분했다.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에 이어 '파친코'까지 이민자 가족의 삶을 대변하는 캐릭터를 맡게 됐다. 그는 자신이 왜 이민자 이야기에 집중하게 됐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고, 과거 미국에서 거주하면서 느꼈던 점들이 가슴속 깊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과거 미국 플로리다의 작은 동네에 살았어요. 당시 저는 그렇게 사회적이지 않았고, 영어도 잘 못했죠. 일을 한 것도 아니어서, 인종차별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했고 그저 착한 미국인 친구들의 도움만 받았어요. 그런데 자녀들이 인종차별 등을 겪은 걸 알게 됐어요. 문뜩 이들이 '국제 고아'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국에 와도 한국말을 못 하니까 이상하고, 미국에서는 생김새가 다르다고 차별받는 거예요.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았으니 제 아이들과 비슷한 교포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몰라요. '미나리'의 아이작 감독도 그랬고, '파친코'도 마찬가지죠. 그냥 마음이 움직여요."

선자는 가정을 꾸리기 위해 "냄새난다"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김치를 판다. 녹록지 않은 이방인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면서 깊은 모성애까지 아우르는 장면이다. 윤여정은 미국 생활 당시 일을 하진 않았지만, 이혼 후 삶을 꾸리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한 경험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저하고는 상황이 조금 틀려요. 생각해 보면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할 때 힘든지 아닌지 모르잖아요. 일 빼고는 선택이 아예 없으니까요. 이것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선자는 김치를 만들어서 팔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정신없이 일했을 거예요."

'파친코' 스틸 / 사진=애플TV+ 제공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배우 진하도 '이방인'이라는 작품의 키워드에 깊이 공감했다. 일본에서 차별받는 재일교포 3세 솔로몬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솔로몬의 모습이 자신의 미래가 될 수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전 솔로몬과 다르게 재일교포도 아니고, 일본어도 못해요. 그런데 미국에서 경험한 것들이 솔로몬을 이해하는 시작점이 됐어요. 제가 연기라는 걸 업으로 삼으려고 마음먹기 전에, 잠시 금융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대학교 다닐 때는 여름 인턴십으로 은행을 지원하려고 할 정도로요. 이후 연기의 길을 걷게 돼 무산됐지만, 만약 그때 연기를 찾지 못했으면 저도 솔로몬 같은 사람이 됐을 거예요. 연기는 공감하고, 제 마음에 모든 것을 열어놓고 인류애를 깊이 생각하는 일이잖아요. 저에게서 그런 마음이 빠지면 곧 솔로몬이죠. 언제나 가면을 쓰고 성공하기 위해 야망 넘치는 남자 말이에요."

이들은 일제강점기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았지만, 위 세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각각 선자와 솔로몬의 상황을 이해했다. 윤여정은 1924년 생인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진하는 1911년 생인 할머니의 입을 통해 당시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저희 할머니는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아버지고 공부를 하셔서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시죠. 일부 가족 중에서는 강제로 일본어를 구사해야 되는 분도 있었어요. 이런 아픈 역사를 TV에서 보여줄 수 있게 된 건 영광스럽고, 어떻게 보면 특권일 거예요. 언젠가 제 가족과 저의 이야기를 연기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은데, 이렇게 기회가 빨리 올 줄 몰랐죠."(진하)

일제강점기 중 일본으로 이주한 한국인 이민자들을 통칭하는 일본어 표현인 자이니치(재일교포)로 불리게 됐다. 윤여정과 진하는 '파친코'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재일교포의 삶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우리나라가 독립하자마자 6.25 전쟁이 났잖아요. 재일교포는 어딘가에 떨어진 사람들이 됐어요.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가 받아주지도 않고, 일본에서 살게 된 거죠. 재일교포는 한국인이라는 걸 굉장히 자랑스러워한다고 해요. 조총련(친북 성향 재일교포 단체)에 가야 했던 이유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서라고 들었어요. 전쟁이 나면 우리는 우리 땅에 있는 사람들만 구제하려고 했지, 외국에 사는 동포까지 구제하려고 하지 않았으니까요. 이번 작품을 통해 많이 배웠어요."(윤여정)

"솔로몬은 위 세대 교포들이 했던 결정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의 희생이 있기에 탄생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어요. 저도 미국에 이민 오면서 부모님의 희생이 많았던 걸 알기에 공감이 많이 됐어요. 무게감 있게 그리려고 했습니다."(진하)



윤여정과 진하는 3개국어로 연기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것도 단순하게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만 표현하는 게 아니라 일본인이 하는 영어, 일본어 억양이 섞인 한국어 등 다양한 변수를 감수해야 됐다. 특히 윤여정은 부산 사투리까지 더해져 언어적인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할 때 경상도 사투리로 연기했는데, 그때 사투리를 배우느라 연기를 망친 경험이 있어요. 사투리에 너무 집중하니까 연기가 잘 안되더라고요. 작가에게 물어봤더니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원어민처럼 사투리를 구사할 수 없다고 했어요. '파친코' 때도 사투리 코치가 알려주려고 했는데, 전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그냥 포인트만 살리기로 했죠. 또 선자가 16살에 일본에 넘어가니 사투리를 많이 잊었을 거라고 해석했고요."(윤여정)

"매번 촬영 때마다 책임감을 느꼈어요. 전 재일교포 3세니까 한국어에도 일본어가 묻어야 됐으니까요. 실제로 전 영어를 쓰니 영어 어투가 있잖아요. 그걸 빼려고 노력했죠. 언어적으로 테크닉에 굉장히 많이 신경을 썼어요."(진하)

할머니와 손자로 호흡을 맞춘 윤여정과 진하는 서로 이어져 있는 기분을 느꼈다고. 윤여정은 진하라는 새로운 배우를 만나 행복했고, 진하는 마스터와 연기하게 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또 연기를 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많은 것을 나누고 친구가 되기도 했다.

"윤여정 선생님과 같은 마스터와 일을 하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에요. 좋은 연기를 가까이서 보는 건 흔치 않은 기회라 더 보려고 노력했어요. 아직도 첫째 날 촬영이 잊히지 않아요. 기차역 장면이었는데, 기다리는 시간에 대기하면서 윤여정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처음에는 스타와 대화한다는 것 자체로 흥분됐는데, 점점 연기 얘기로 들어가면서 집중하게 되는 저를 발견했죠. 꿈같은 순간이었어요."(진하)

"배우는 이어져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같이 느끼고 함께 신을 만들어 나가는 거죠. 제가 그래서 개인적으로 모노드라마를 싫어하기도 해요. 배우는 배우끼리 알잖아요. 키 크고 잘생겨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진하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런데 연기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윤여정)

윤여정은 지난해 '미나리'로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특히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수상해 기념비적인 성과를 냈다. 이처럼 한국 콘텐츠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조하고 있는 그는 운이었을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달라진 건 없어요. 똑같이 친구와 놀면서, 똑같은 집에 살아요. 제가 만약 더 어렸을 때 아카데미상을 탔으면 둥둥 떠다녔을 것 같아요. 제 나이에 감사해 보긴 처음이에요. 늙는 건 슬프지만, 상이 절 변화시키지 않은 게 감사한 거죠. 전 저로 살다가 죽을 거예요.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던 스티븐 연에게도 '네가 지금 안 타길 잘했다'고 말했어요. '지금 네 나이에 타면 네가 아니게 될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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