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예능의 속살을 현혜선 기자의 시점으로 들여다 봅니다.
"기분이 흐리다." "마음에 비가 내린다." 감정을 날씨에 빗대어 표현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다. '기상청 사람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환절기, 국지성 호우 등 구체적인 표현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은유한다. 또 날씨와 관련돼 기상청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를 배치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채운다.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극본 선영/연출 차영훈/이하 '기상청 사람들')은 기상청 사람들의 일과 사랑을 그린 작품. 진하경(박민영)은 기상청에서 역대 최연소로 팀장에 오른 엘리트다. 그는 기상청 수석대변인 한기준(윤박)과 10년 동안 연애하다가 종착역인 결혼을 앞두고 있다가, 한기준이 기상청 출입 기자 채유진(유라)과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고 파혼한다. 채유진의 전 남자친구는 기상청 특보예보관 이시우(송강). 진하경과 이시우는 서로를 위로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다시는 사내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진하경의 다짐마저 부술 정도로 불같은 사랑이다.
지독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다. 어제의 연인이 오늘의 남이 되고, 내일의 연인이 나의 전 연애와 얽혀 있다. 자칫 전 연인의 연인끼리 사랑을 하는 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섬세하게 깔린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공감하게 된다. 진하경과 이시우는 사랑보다 일이 우선인 인물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기후 변화 예측에 쓰고, 데이트할 때도 날씨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그러다 결국 연인을 떠나보내게 된 공통점이 있다. 맡은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매력을 느낀 이들이 사랑에 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날씨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날씨와 사랑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예측하기 어렵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날씨처럼 상대방의 마음은 도통 알기 어렵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른 온도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또 나비효과처럼,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상의 작은 변화가 태풍처럼 밀려와 미래의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1회의 부제인 '시그널'은 한기준의 마음이 변했음을 보여주는 전조증상을 뜻한다. 홀로 결혼 준비를 하던 진하경은 웨딩사진, 결혼식장 등이 예약되지 않았다는 문자를 보면서 달라진 한기준을 직감한다. '체감온도'는 진하경, 한기준과 채유진, 이시우가 사랑의 온도 차이로 결국 이별을 맞았음을 의미한다. '환절기'는 계절이 바뀌듯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는 뜻으로 전 연인을 떠나보낸 진하경과 이시우가 새로운 사랑에 빠졌음을 알리는 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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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체까지의 거리를 뜻하는 '가시거리'에서는 이제 막 사내연애를 시작한 진하경과 이시우가 직원들의 눈을 피해 알콩달콩하게 지낸 모습을 보여준다. 예측이 어려운 '국지성 호우' 회차에서는 진하경과 이시우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치면서 서로의 몰랐던 모습을 알게 돼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내용을 그린다.
연인의 과거 연애를 떠올리는 건 불쾌한 일. 과거 이시우와 채유진이 동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기준의 심리 변화로 '불쾌지수' 회차를 표현한다. '열대야'는 복잡한 마음에 잠 못 이루는 네 남녀의 심리를 대변한다. 연애의 종착역이 결혼이라고 생각했던 진하경은 비혼주의자인 이시우 때문에 심란하고, 이시우도 연애와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자꾸 어긋나는 채유진과 한기준의 결혼 생활은 파경 직전이다. 갈등이 절정에 이른 만큼, 고민은 깊어진다.
이들의 관계는 "복사기도 알고 있다"는 사내연애로 얽혀있기에 잔혹하다. 숨기고 싶은 나의 치부가 모르는 사람의 입에서도 오르내리는 일은 잔인하다. 일과 무관하게 연애사로 인해 순식간에 평판이 깎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랑하기에 앞으로 나아간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사내연애를 이어나갈 수 있는 건 오롯이 사랑이 가진 힘 때문이다. 이는 결혼을 생각했던 진하경의 신념마저 뒤흔들 정도로 강력하다. 복잡하게 얽힌 사랑의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날이 갈수록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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