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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못 넘을 벽 아냐…올림픽 金 따고 IOC 위원 도전”

■아시아 최초 올림픽 빙속 남자 1500m 2연속 메달 김민석

亞 최초보다 메달 자체에 자부심

하루 4시간씩 빠짐 없이 훈련하며

간절함으로 체격 열세 극복 노력

金 나위스 "행복해?" 물음에 자극

올림픽 정상 찍고 3연패도 목표

영어 공부하며 IOC 선수위원 도전

김민석이 자신의 스케이트화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트랙을 달린 바로 그 스케이트, 그 스케이트 날”이라고 했다. 성남=오승현 기자




겨울 왕국의 왕자처럼 푸른빛 도는 은발로 멋지게 염색하고 나타난 김민석(23·성남시청)이 “원래 올림픽 전에 하려 했는데 왠지 자제해야 할 것 같아서 끝내고 한국 오자마자 물들였다”고 했다.

앞으로 스케이트 인생의 목표를 얘기할 때도 김민석은 망설임이 없었다. “은퇴하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도전하고 싶어요. 세계 각국 선수들이랑 원활하게 소통하려면 영어는 필수니까 유튜브로 틈틈이 공부하고 있는데 오는 4월에 시즌이 끝나면 따로 영어 강의도 제대로 들어보려고 해요.”

지난달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긴 스피드스케이팅 김민석을 최근 성남빙상장에서 만났다. 올림픽 뒤 동계체전까지 마쳐 마음 놓고 쉴 만도 한데 김민석은 여전히 빙상장을 찾는다.

남자 1500m 메달은 금메달 같은 동메달이었다.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한 석연치 않은 쇼트트랙 판정에 한국 선수단이 노메달로 신음하던 중 김민석이 막힌 혈을 뚫었다. 메달 실패를 비관해 허리를 숙이고 있는 중국 선수의 어깨를 감싼 모습도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장면이라며 화제가 됐다.

김민석은 “쇼트트랙 판정 논란으로 반중 감정이 심해진 시기여서 그런지 올림픽 정신 얘기까지 나왔지만 원래 친한 친구라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올림픽 폐막식 때 사진도 같이 찍고 추억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열아홉이던 2018 평창 올림픽에서 아시아 남자 최초로 빙속 1500m 올림픽 메달(3위)을 딴 김민석은 베이징에서 이 종목 2회 연속 올림픽 메달이라는 더 어려운 최초 기록을 썼다. 이에 대한 자부심을 묻자 그는 “많은 분들이 아시아 최초를 말씀해주시는데 그렇게 대단한 건가 싶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시안이든 유러피언이든 똑같은 빙속 선수니까 결국 노력 여하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자부심이라면 아시아 최초 기록보다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자체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단거리의 스피드와 장거리의 지구력을 모두 요하는 1500m는 죽음의 레이스로 불린다. 이 종목 메달은 유럽과 북미의 전유물이었는데 김민석의 등장 이후 판이 깨졌다. 김민석은 “특히 후반 레이스에서 골격과 키가 큰 서양 선수들이 긴 다리와 파워를 이용해 앞으로 치고 나간다. 여기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저는 훈련 때부터 간절함을 느끼면서 준비했다”며 “항상 진지하게 연습 때도 대회처럼 피나게 노력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코로나19로 멈춘 시즌에도 그는 하루도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사이클, 웨이트 트레이닝, 러닝, 자세 훈련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하루 4시간씩 반복했다.



김민석에 따르면 1500m는 레이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힘든 종목이다. 마지막 바퀴로 들어서며 라스트 랩 종소리를 들을 때는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다리가 없어질 것 같단다. 쇼트트랙도 타고 장거리도 타면서 기록이 가장 잘 나오는 종목을 찾아 전공으로 삼게 됐는데 그게 1500m다.

시상대에 나란히 선 메달리스트들. 토마스 크롤(왼쪽부터), 키엘드 나위스, 김민석. 연합뉴스


이번 대회 1500m는 신기록 잔치였다. 토마스 크롤(네덜란드)이 20년 만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고 나서 바로 뒤 조의 키엘드 나위스(네덜란드)가 곧바로 그 기록을 경신했다. 김민석은 나위스 옆에서 뛰었다. “상대적으로 부진한 선수 옆에서 달리면서 ‘압살’하는 경기를 좋아한다”는 그는 “이번에는 쟤(나위스)만 쫓아가다가 막판에 역전도 노려보는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경기 4시간 전 약간 부족하다 싶은 정도의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 1시간 30분 전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등 루틴은 깨지 않았다.

평창 올림픽 때도 나위스가 금, 김민석은 동메달이었다. ‘빙속국(國)’ 네덜란드가 휩쓰는 종목에서 어깨를 견준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인데 김민석의 생각은 달랐다. “시상대에 같이 섰는데 나위스가 ‘4년 전이랑 똑같이 됐네. 아 유 해피(Are you happy)?’라고 하더라고요. 축하 인사라는 걸 알면서도 살짝 약이 올랐어요. ‘너 또 3등이네’ 이런 느낌이라고 할까.”

김민석은 “올림픽 전까지 굉장한 노력을 했기 때문에 이 정도면 금메달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결과를 받아보고는 아직 노력이 부족하구나 실감하게 됐다”며 “그렇다고 네덜란드 선수들이 벽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4년 뒤에 보자’ 이런 기분이다. 올림픽 챔피언이 되고 싶고 올림픽 2연패, 3연패로 나아가는 게 목표”라고 당차게 말했다.

누나만 둘인 막내 김민석은 ‘잘했다’ ‘멋지다’는 칭찬도 좋지만 ‘김민석 선수 덕분에 힘이 난다’는 말이 뇌리에 박혔다고 한다. “제 경기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생각만 해도 감사하고 감동이지 않나요.”

인터뷰 하는 김민석. 성남=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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