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면서 연구까지 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연구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금전적인 부담도 있었죠. 그래서 연구실에 있는 시간은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어릴 적 꿨던 과학자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돼 너무 기쁩니다.”
올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유방암과 관련한 6년의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새롬(34·사진) 씨는 6일 대전 KAIST 정문술빌딩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육아와 연구를 병행하면서 박사가 된 것에 너무 행복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 박사의 박사 논문 주제는 ‘네트워크 다이나믹스 분석을 통한 유방암 세포의 유형변화 연구’. 쉽게 얘기하면 악성 유방암을 치료할 때 독성 항암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세포를 호르몬 치료가 가능한 수준의 정상 세포로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최 박사의 논문을 지도한 조광현 교수는 “유방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연구”라며 “이런 방식의 치료 방법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중학교 1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최 박사는 11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빌게이츠장학재단의 장학금을 받은 후 UC버클리대에서 분자생물학 학사,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과학교육학과 줄기세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다 지난 2016년 시스템생물학에 매료돼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에 입학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역(逆)유학을 온 셈이다.
출산을 앞뒀지만 연구에 대한 그의 집념을 막지는 못했다. 최 박사는 “입학을 하기 전 조 교수와 인터뷰를 할 때는 첫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며 “이 연구실에 너무 오고 싶어 출산한 지 열흘 만에 입학 면접시험을 보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출산과 육아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입학한 후 둘째와 셋째를 얻으면서 그는 3남매의 어머니가 됐다. 다둥이를 키우려면 일단 절대적인 육아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데만 2시간이 필요했다. 둘째가 태어난 후에는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면서 금전적 부담도 생겼다. 시가나 친정의 도움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시가는 멀리 떨어져 있고 친정은 미국에 있었기 때문. 모든 것은 자신과 남편이 해결해 나가야 했다. 다행히 남편은 그의 든든한 조력자가 돼 주었다. 주말에 집에 올 때면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 했다고 한다. 최 박사는 “서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양육 문제로 다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가 오히려 내 연구 의지를 북돋아 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연구 시간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연구실에 나왔을 때 누구보다 집중력을 보인 이유이기도 하다. 시간 배분도 철저하게 이뤄졌다. 그는 “연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생활했다”며 “나중에는 아이들을 재우고 밤 시간을 활용해 논문을 읽고 분석했다”고 고백했다.
최 박사는 여성들에게 절대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출산이나 육아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내 팔자인가 보다’ 하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시도해 보라는 것이다. 물론 혼자 힘만으로는 힘들 수 있다. 그는 “내가 박사 학위를 딸 수 있었던 것은 주위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여성의 꿈을 북돋아 주는 사회로 갔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최 박사는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조 교수와 공동 설립한 바이오테크놀로지 회사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 회사는 기초연구에서 나오는 결과물을 통해 실제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을 만드는 회사”라며 “연구도 병행할 수 있기 때문에 조 교수의 공동 창업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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