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의 긴장감을 위해 존재하는 빌런. 강한 캐릭터로 쉬이 인상을 남길 것 같지만,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쓰지 않으면 캐릭터는 물론 극 전체의 몰입도를 떨어뜨리게 되는 어려운 역할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귀남 역 유인수가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지금 우리 학교는’(감독 이재규/이하 ‘지우학’)은 갑자기 퍼진 좀비 바이러스 때문에 학교에 고립된 고등학생들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 지난달 28일 공개된 뒤로 보름간 넷플릭스 TV쇼 부문 글로벌 1위를 지키고, 넷플릭스 비영어 TV 부문 역대 시청 시간 5위에도 오르는 등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귀남은 2인자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일진 학생. 그는 좀비에게 물린 뒤 인간도 아니고 좀비도 아닌 이른바 ‘절비’가 되면서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된다. 이후에는 같은 학교 학생 청산(윤찬영)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처단하기 위해 찾아다닌다.
“귀남이 연기를 할 때 되게 사소한 것까지 집에서 연습을 진짜 많이 했어요. 웃을 때 느낌이라든지, 사람을 쳐다볼 때 시선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지니까요. 어떡하면 불량스러운 걸 넘어서 악랄한 느낌이 나는 눈빛을 줄 수 있을까 싶어서 연습을 많이 했죠.”
‘절비’가 되기 전 귀남은 청산과 몸싸움을 하다 한쪽 눈을 잃게 된다. 이 때문에 유인수는 한쪽 눈을 가린 채로 연습을 하고, 실제 촬영 때는 특수 분장을 하고 연기했다. 불편함이 없게끔 분장 수정도 여러 번 거쳤지만 한쪽이 아예 안 보인 채로 연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특수분장 덕분에 작품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았다며 만족해했다.
“작품을 보면서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동공을 많이 사용해요. 연기할 때 천장도 바라보고 누군가를 바라볼 때 등 사소한 것까지도 뭔가 만들어내야 할 것 같았어요. 제 눈빛의 포인트 중 제일 중요한 건 의지가 없어 보여야 하는 거예요. ‘나는 사실 너를 어떻게 할 의지가 없는데 나한테 까불지 마라’ 이런 거죠. 예측이 안 되니까 오히려 더 무서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일명 ‘병지컷’이라고 불리는 뒷머리만 긴 헤어스타일도 귀남의 이미지에 한몫했다. 촬영하는 기간 동안 그는 매일 옆머리를 밀며 헤어스타일을 유지했다고. 그는 몇몇 시청자들이 ‘유인수가 유독 헤어스타일을 잘 소화했다’고 남긴 댓글을 보고 웃어 보였다.
“드라마에서는 그 헤어스타일이 좋은 효과로 잘 각인이 되긴 했는데요. 그 머리가 사실 굉장히 일상생활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기본적으로 웃어른들의 시선에는 말도 안 되는 머리고, 그 머리를 가지고 아무리 사람 좋은 표정을 지어도 그렇게 보이지가 않아요. 뒷머리가 계속 거슬리기도 하고요.”(웃음)
작품은 살아남은 학생들이 함께 힘을 합쳐 좀비를 무찌르는 전개로 이어진다. 이와 달리 귀남은 홀로 청산을 찾아다니는 장면이 주를 이루다 보니, 실제로도 외로운 상황이 생기곤 했다. 그는 “촬영을 하는 순간에는 혼자 있다 보니까 얻게 된 좋은 상황들이 많았다. 내가 더 집중할 수 있는 상황도 있고, 내가 잘하면 그림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이 됐다”고 하면서도 장난스럽게 홀로 있는 시간들이 많아지며 초조했던 순간들을 이야기했다.
“다른 친구들이 촬영을 하면 할수록 점점 친해져 가는 게 보이더라고요. 단톡방에서 얘기할 때 ‘아유 애들이 많이 친해지고 있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가끔 한 번 만나게 되면 제가 너무 반가우니까 못 풀었던 회포를 다 풀려고 했죠. 애들한테 가서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려고 했고요. 그런데 분장도 하고 있고 그래서 그런지 배척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조금 아쉽긴 했는데 작품적으로는 혼자 있어서 제가 도움을 받았던 게 많았던 것 같아요.”
준비 기간을 합쳐 1년 남짓 ‘지우학’을 촬영하는 동안 가장 많이 친해진 배우는 윤찬영이다. 작품 속에서는 가장 적대적인 사이지만, 실제로는 둘도 없는 형 동생 사이가 됐다. 이사 간 집이 우연치 않게 윤찬영의 집과 10분 거리인 것을 알게 된 뒤로는 거의 맨날 만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찬영이와는 거의 매일 만나고 매일 통화하고, 북악스카이웨이에 가서 야경도 보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찬영이는 진짜 연기 얘기밖에 안 했던 것 같아요. 순간순간 찍을 신들에 대해서만 얘기했지 사적인 얘기를 그렇게 많이 나누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찬영이가 사적인 얘기를 저에게 하면 ‘그랬어? 난 몰랐어’라고 해요. 동생이 최근에 대학을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동생이 고등학생이었어?’라고 되물었다니까요?”
“찬영이가 워낙 진중하고 가볍지 않아요. 약간 선비 같은 스타일이어서 제가 사적인 질문을 해도 자연스럽게 찬영이는 또 연기 얘기를 하죠. 그런데 찬영이의 MBTI는 ENFP예요. 아닐 것 같잖아요? 근데 ENFP랑 INFJ인 저랑 완전 최상의 궁합이더라고요. 찬영이가 보이는 모습이 좀 조용조용한데 사실 또 저랑 있을 때는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어린아이 같은 모습도 많아서 MBTI가 생각보다 잘 맞는가 보다 싶었어요.”(웃음)
총 12부작으로 긴 러닝타임의 ‘지우학’이 끝까지 긴장감을 갖고 갈 수 있었던 데는 귀남의 역할을 배제할 수 없다. 귀남이 등장할 때마다 시청자들은 다시금 손에 땀을 쥐게 됐고, 학생들이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응원하게 됐다. 그럴수록 섬뜩하고 잔인한 귀남을 연기한 유인수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주변에서 워낙 ‘지우학 잘 봤다’는 연락을 많이 해줘서 ‘지우학이 잘 됐구나. 우리 작품이 재미가 있었구나’하면서 인기를 실감하고 있어요. 빌런인데 인기가 있는 이유는 사실 저도 되게 궁금해요. 제 생각에는 작품에서 몸 사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했던 장면들을 많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특히 액션신이라든지 분장하고 했던 연기들이요. 그래서 그냥 ‘참 열심히 하는 배우구나’라는 생각에 좋아해 주시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귀남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일부 팬들은 ‘귀남이 귀여운 남자의 줄임말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유인수도 이런 말을 반가워하며 “나도 계속 현장에서 눈 분장을 하고 ‘귀엽지 않냐’고 하면서 다녔다”고 말했다.
“원작 웹툰 작가님이 2010년도에 인터뷰한 기사가 있더라고요. 귀남을 ‘귀한 남자’로 풀어서 설명을 하신 부분이 있었는데, 제가 생각해서 만든 인물은 귀한 남자까지는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귀한 남자가 아니면 뭐가 있을까’ 하다가 누가 그냥 귀엽게 ‘귀여운 남자’라고 이렇게 툭 던졌던 것 같은데 거기서 꽂혔어요.”(웃음)
“저라는 사람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에게 사실 어떻게 반응을 하고, 어떻게 해야 될지 아직 잘 몰라요. 그런 경험이 많지가 않거든요. 제가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생각하고 있는 건, 결국에는 제가 어떤 연기를 하든 즐거움을 전달해 드려야 저라는 배우의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즐거움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제가 우선 즐거워야 하니까 앞으로 최선을 다해서 즐겁게 연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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