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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관리 기준' 기업에 떠넘겨…"원하청 사고책임 공방 불가피"

[처벌만능주의 중대재해법-<중> 도마 오른 '졸속 과잉 입법']

   처벌 대상 '경영책임자 범위' 모호해 대응 막막한데

   정부, 원청만 책임 아니라면서 연일 상반된 메시지

   사측-감독 강화·노측 -인권 침해 놓고도 갈등 예고

지난 7월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현장 근로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대재해법은 하청업체 종사자에 대한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원청에만 부과한 게 아니라 하청업체에도 부과하고 있습니다.” (9월 30일 고용노동부 입장 자료)

“지난 2016년부터 최근까지 조선업에서 8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는데 77.3%인 68명은 협력업체 노동자였습니다.”(12월 10일 안경덕 고용부 장관, 조선업체 최고경영자 간담회)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두고 경영계가 왜 혼란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경영계가 중대재해법의 대표적인 모호한 지점을 원·하청 사고 책임 공방이라고 지적할 때마다 고용부는 “중대재해는 원청만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안 장관의 발언처럼 고용부는 중대재해법에서도 원청의 상당한 사고 책임이 필요하다고 읽히는 상반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경영계가 중대재해법을 두고 “현장에서 갈피를 못 잡는 법”이라며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대비 공동학술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고용노동부


중대재해법이 경영계의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은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의 범위(중대재해법 제2조)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법에서는 ‘경영책임자 등’을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이 있는 책임자 또는 안전 보건에 관한 업무 담당자로만 규정했다. 단 통상 ‘바지 사장’으로 불리는 형식적 대표는 안 된다. 경영책임자는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조직·인력·예산 등 전체 부문의 의사결정권자여야 한다는 전제를 붙였다. 이는 중대재해법에서 요구하는 안전 보건 업무 담당자도 마찬가지다. 다른 각도로 해석하면 중대재해법을 위반하면 결국 오너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경영계의 관심은 중대재해 발생 시 원·하청 간 책임 소재를 어떻게 가릴지 여부에 쏠려 있다. 제조업은 공정 분야별로 외주화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수많은 하청업체의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는 게 현실이다. 조선업처럼 산재의 상당수가 하청업체에서 일어나는 이유다.



더욱이 중대재해법은 ‘종사자’라는 개념을 도입해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한 근로자부터 도급·용역·위탁 등 계약 형식과 다단계 도급까지 모두를 보호한다. 하청업체 공정의 위험성을 원청이 어느 수준까지 관리할 수 있는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는데 정작 현장에서는 불법 파견으로 비춰질까봐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미 중대재해법의 ‘모법’과 같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원청의 책임 범위(지배·관리)를 두고 많은 혼란이 있었다. 원청 입장에서는 사고를 막으려면 정비·보수·청소 등 비정형 작업에서 발생하는 사고 가능성까지 일일이 챙길 수밖에 없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원청이 하청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위험한 결정을 막을 때 불법 파견 징후로 본다”며 “불법 파견 논란을 줄일 관련 지침 개정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현재 중대재해법의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길은 안전보건관리체계 확립(중대재해법 제4조)이다. 고용부는 안전 시스템 조성에 목적을 두고 ‘막을 수 없는 사고’까지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강조해왔다. 이 때문에 경영계는 안전보건관리체계에 관한 아홉 가지 법적 의무 사항을 최대한 구체화해달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고용부의 법 해설서를 보더라도 경영계의 ‘갈증’이 완전하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안전 보건 전담 조직의 구성원은 2명 이상으로만 정하고 ‘합리적인 인원으로 구성하라’고 모호하게 규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재해 예방에 필요한 예산을 얼마나 들여야 하는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요인에 대한 점검을 어느 수준으로 어느 선까지 해야 하는지도 명확한 기준 없이 전부 기업 자율에 맡겼다. 기업 입장에서는 충분한 시스템을 갖췄는지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경영책임자는 안전·보건 관계 법령을 준수해야 하는데 관련 법령은 화학물질관리법·소방관계법·건설안전관계법 등 무려 30여 개에 달한다. 서울경제와 인크루트가 449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대재해법 실태 조사를 보면 예산 편성(27.9%),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성(26.7%)이 가장 어렵다고 답했다.

중대재해법의 입법 취지는 노사의 안전 의식을 높여 중대재해를 막는 것이다. 하지만 사업주의 의무만 강조되다 보니 역으로 노사 관계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시행령 제4조에 담긴 안전 보건 사항을 보면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현장 위험은 근로자가 가장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현장 의견을 반영하라는 취지다. 문제는 종사자의 의견을 재해 예방 확보를 위해 사측이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여부다. 고용부의 해설서는 경영 비밀 침해, 과도한 예산 요구, 근로조건의 변경을 목적으로 하는 요구는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법 위반이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 과로나 위험 작업인 탓에 2인 1조 작업을 건의할 경우 요청이 안전 개선 요구인지, 근로조건 개선인지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인 1조 작업의 정례화는 그동안 노조를 중심으로 해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제도다. 중대재해법에 맞춰 사업주가 강화할 근로감독이 정당한 권리인지 근로자에 대한 인권침해인지를 놓고 노사 갈등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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