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한 번 제대로 즐겨볼까”.
돌아온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6·미국)가 첫 홀에 나서며 캐디 조 라카바에게 한 말이다. 라카바는 “오랫동안 우즈와 함께했지만 대회 시작 때 이렇게 얘기한 건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우즈는 “그만큼 그리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복잡한 부상 이력에 복귀전도 숱하게 치러봤지만 이만큼 극적인 복귀는 없었다. 298일 전 그 사고로 우즈는 골프는커녕 자력으로 걷지도 못 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에 휩싸여있었다. 지난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에서 당한 자동차 추락 사고로 최악의 경우 다리를 잃을 상황까지 몰렸지만 기적적인 회복으로 다시 팬들 앞에 섰다.
19일(한국 시간) 플로리다주 리츠 칼턴 골프 클럽(파72)에서 열린 PNC 챔피언십(총상금 108만 5,000 달러) 1라운드.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 투어의 이틀짜리 이벤트 대회일 뿐인데 1번 홀 티잉 구역에 도열한 겹겹의 관중 때문에 메이저 대회를 방불케 했다.
“웰컴백” 함성과 함께 날아간 우즈의 첫 티샷은 오른쪽 페어웨이에 ‘예쁘게’ 떨어졌고 가볍게 버디를 넣은 그는 주먹 인사를 건네며 열두 살 아들 찰리에게 칭찬을 구했다. 이 대회는 둘 중 더 좋은 위치의 공으로 다음 샷을 하는 방식의 2인 1조 가족 대회. 종종 아빠보다 더 나은 샷을 선보이기도 한 주니어 선수 찰리는 티샷 뒤 공이 떨어지기도 전에 걸어나가거나 6m 버디를 낚으면서 퍼터를 들어 올리는 등 아빠의 시그니처 포즈를 똑같이 재연했다.
우즈의 대회 출전은 지난해 이 대회 이후 꼭 1년 만이다. 지난해 공동 7위에 오른 뒤 얼마 후에 끔찍한 사고가 있었고 이후 혹독한 재활을 거쳐 아들 앞에서 복귀 무대를 가졌다. 디 오픈 두 차례 우승의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은 “과거의 우즈라면 이 대회를 복귀전 삼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들을 위해 나온 것”이라고 했다.
‘팀 우즈’는 버디만 10개를 기록하며 10언더파 62타를 합작해 20개 팀 가운데 공동 5위에 올랐다. 스튜어트 싱크(미국) 부자(父子)가 13언더파 1위다.
이례적으로 전날 프로암에도 참가해 몸을 푼 우즈는 이날 전성기 못지않은 장면을 몇 개 남겼다. 3번 홀(파5)에서 232야드를 남기고 4번 아이언으로 2온에 성공했고 14번 홀(파5)에서도 핀까지 256야드 거리에서 3번 우드로 그린에 보냈다. 11번 홀(파4)에서는 같은 조의 세계 랭킹 6위 저스틴 토머스(미국)보다 티샷을 더 멀리 치기도 했다. 프로암에서 320야드 드라이버 샷을 날렸던 홀이다.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넣은 아들을 안아주며 하얀 이를 드러낸 우즈는 “오늘 좋은 샷은 세 번 정도 있었다”며 “투어 레벨에서 다시 뛰려면 또 다른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수천 개씩 쳐보며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겸손하게 말했지만 이날 우즈의 드라이버 샷 볼 스피드는 PGA 투어 평균 수준인 시속 171마일(275㎞)까지 찍혔다.
우즈는 다리 수술 뒤 침대에만 있던 첫 3개월 이후로는 하루도 재활과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날 홀로 카트를 몰고 이동한 우즈는 한때 다리가 불편한 모습도 보였지만 대체로 거뜬하게 18홀을 마쳤다. 우즈는 이제 지난해 11월 마스터스 이후 첫 공식 대회 출전을 준비한다.
한편 프로암에서는 아들 찰리가 한국 제품인 오토플렉스 샤프트를 시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PGA 투어 29승, 챔피언스 투어 29승의 전설 리 트레비노가 쓰는 드라이버를 빌려서 쳐보고는 신기하다는 듯 웃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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