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사상가 또는 운동가가 아니라 고용된 대리입니다. 자신의 이념과 가치 실현을 위해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되고 국민 의사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9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은) 머슴이 주인을 위해 일하는 건데 자기 일을 하려고 하면 안 된다”며 정책 유연성을 강조했다. 정책 결정에 최우선 요소가 국민의 의사라는 점에서 최근 전 국민 재난지원금 철회나 국토보유세 선회 발언 등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었다. 다만 그는 “불가능한 공수표가 아니라 자기 철학과 가치 비전을 뚜렷하게 갖고 거기에 맞춰 효율적인 정책을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조건 여론의 흐름에 떠밀리지도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부가 지지층 반발이 부담돼 ‘정책 도그마’에 빠졌던 오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대담=이철균 정치부장
-지도자는 지지층의 반발도 극복해야 할 정책이 있을텐데.
△옳은 일이고, 국민이 원하면 해야 한다. 강성 지지층의 반대에도 (필요한 정책은)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다. (국민에게 돌아갈) 성과가 중요할 뿐이다.
-정책을 유연하게 가지고 가겠다는 것인가.
△유연하다는 게 기능적이거나 기술이 아니고 책임이라 생각한다. 정치인은 사상가 또는 운동가가 아니고 고용된 대리인이다. 자기의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고집을 부리면 안 되는 존재다. 자기가 원칙과 가치에 기반한 정책을 만들더라도 국민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사실 당연한 원리를 얘기한 것이다. 정치인은 자기의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는 지배자가 아니고 국민의 일을 대리하는 사람이다. 국민의 의사를 대신하는 대리인이기 때문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객관적으로도 맞고, 국민에게 필요한 일이라도 국민이 싫다면 하지 말아야 된다. 그게 민주국가의 원리다.
-최근 전 국민 재난지원금 철회도 국민 의사를 중심에 둔 것인가.
△재정지출의 ‘이중 효과’가 있기 때문에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본 예산에 넣는 걸 포기한 것이다. 영영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소상공인 추가 지원조차도 쉽지 않을 수 있어 양보하는 대신 지역화폐 예산을 늘리고 소상공인 지원도 1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올리는 식으로 선회했다.
(※지난 3일 국회는 607조7,000억원 규모의 2022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6조 원 발행규모였던 지역화폐는 30조 원 늘어났고, 소상공인 손실보상은 하한액이 늘었다. 이 후보가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철회하면서 가능했다)
-전 국민 재난 지원금을 하겠다는 의지인데.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소상공인 지원 방식으로 봐야 한다. 첫째는 금융 지원으로 돈을 빌려주는 방식, 둘째는 현금으로 직접 지원 하지만 죽어 있는 돈이다. 셋째가 매출을 늘리는 방식의 지원인데 그럼 돈이 살아 움직이게 된다. 즉, 소비 쿠폰 형태로 매출 지원을 해주면 국민 소득이 늘고 매출도 늘어나는 이중 효과가 생긴다. 매출만 증가하는 게 아니라 소비승수효과가 생기게 돼 생산과 유통과 고용을 유발하게 된다. 그래서 지역화폐 형태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소상공인 매출 지원 효과를 고려해 주장하는 것이다. 충분히 설득할 자신이 있다.
-국토보유세에 대한 입장이 바뀐 것은 그런 차원인지.
△제 주장이 관철되지 않는 건 중요하지 않다. 국토보유세는 토지 이익 배당인데 역시 저는 필요하다고 보고 있지만 국민들의 동의하에 하겠다는 뜻이다. 필요하면 기본소득위원회를 만들어서 충분히 논의하고 국민들이 동의하면 하겠다. 국토보유세라고 하니 세금이라 생각하고 당연히 반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토지 수익 배당 또는 토지 배당 형태로 내는 거 없이 받기만 한다는 사실을 알리면 반대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렇게 해도 동의하지 않으면 후퇴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야당의 정책을 수용할 수도 있나.
△정책은 네 것, 내 것 이런 게 어디 있나. 그래서 정책에는 저작권이 없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100조 원 소상공인 지원을 하자고 하니 훌륭하다며 바로 수용하지 않았나. 윤석열 후보가 50조 원 지원 공약을 냈을 때도 바로 받아들였다. ‘당신의 성과를 인정한다 동의해줄게’ 이런 방식은 정책 주도권을 잃을 수 있어 보통 잘 하지 않지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에게 돌아갈)성과로 증명 받는 게 중요해서다.
-기본소득을 주장해 오셨는데. 국민적 합의가 가능한가.
△당장 전면적 도입이 아니다. 부분적, 단계적인 방식이다. 예를 들면 아동수당을 확대하는 방식, 노인 기초연금을 공평하게 지급하는 방식 등이다. 특히 자산이 많다고 기초연금 지급이 안 되는 실정이다. 집 한 채 있는데 생활비는 방법이 없지 않나. 그야말로 명목상의 자산만 있는 노인들은 일생을 국가를 위해서 더 많은 세금을 낸 사람들인데 국가가 그들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그런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소액이라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최소 생계 유지는 얼마 들지 않는다. 그 다음에 청년·농촌 등 부분적으로 도입하고 전면적인 전 국민 상대의 보편적 기본소득은 국민적 합의를 거칠 것이다. 국민적 합의가 이뤄어지면 점차 (규모를) 늘려가는 가는 식이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은 설득보다 고집스러움이 컸다.
△가격을 누르는 데 행정적으로 집중했던 측면이 있었다. 수요 공급을 통해 만들어진 가격을 누르면 그게 조정되기 어렵고 부작용만 발생하게 된다. 시장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시장의 요구를 들어줘야 되는데 신념이 더 크게 작용했다. 즉 수요 억제에 너무 신념적으로 집중하다가 왜곡이 발생했다고 본다. 결국 원리대로 되돌아가면 가격은 안정된다. 수요 가운데 투기 수요는 억제하고 실수요는 금융, 세제 등을 통해 보호해 줘야 한다.
-최근 야당이 소상공인 지원의 정책 주도권을 가져간 것 같은데.
△김종인 위원장이 중도 진출을 하겠다고 각종 정책을 쏟아내겠지만 결국 그게 공염불이다. 국민의힘을 대표하는 게 아니고 필요에 의해서 장식품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저로서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훌륭한 분이신데 예를 들면 과거의 경제민주화 얘기하면서 박근혜 후보 선대위에서 기초연금을 제시했지만 결국은 선별 복지에 그쳤다. 지금도 정말 우리 시대에 필요한 정책들을 얘기하지만 결국 국민의힘의 정체성과는 맞지 않고 과거와 같이 활용만 당하는 상황이 재연될 것 같다. 대표적으로 소상공인 100조 원 지원도 하루 만에 내부의 공격을 받아서 후퇴해버렸고 본인은 스타일을 매우 많이 구기게 됐다. 저는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인데 진짜 안타깝다.
-정책과 공약을 실현할 자신 있나.
△불가능한 공수표가 아니고 충분히 가능하다. 리더가 용기와 결단력을 가지고 자기의 철학과 가치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거기에 맞춰서 효율적 정책을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역시 필요하다. 국민이 원하면 우리 지지층이 반대해도 추진해야 사회 발전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세종대왕도 한글을 만들려는 데 반대가 컸지 않나. 하지만 지금의 한글이 만들어진 것은 지지층·기득권 등의 반대에도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용기를 내서 정책을 집행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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