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속도를 높이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월가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당장 내년부터 테이퍼링 규모가 지금의 두 배인 300억 달러(약 35조 3,700억 원)까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의 출현에 따른 경기 침체 가능성보다는 당장의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하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을 공식화한 것이다.
11월 30일(현지 시간) 미 경제 방송 CNBC에 따르면 이날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파월 의장은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는 말을 다른 적절한 표현으로 바꿀 필요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 △고용 회복을 위해서는 가격 안정이 중요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몇 달 일찍 테이퍼링을 종료하는 방안 논의 등의 발언을 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오미크론發 긴축 속도 조절론에 선 긋기
이날 파월 의장은 작심하고 나온 듯했다. 오미크론 변이 우려에 월가에서 연준이 테이퍼링 속도를 유지하면서 완화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급격하게 늘어나자 조기에 이를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높다”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인플레이션에 관해서 놓친(missed) 것은 공급망 문제”라고 시인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 여파로 다우 등 미국 3대 주가지수는 최대 2% 가까이 빠졌다.
파월 의장은 오미크론이 가뜩이나 꼬여 있는 공급망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의 경제적 여파가 델타 변이 바이러스 때보다 덜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미크론이 지난해 3월 1차 대유행 때나 올여름 델타 변이 때보다는 경제적 충격이 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라고 전했다.
이는 오미크론이 전염성은 더 클 수 있어도 치명도가 낮을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카비타 파텔 박사는 “오미크론 변이가 (치명도 측면에서) 덜 심각할 수 있다는 분석은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평가했다.
이렇다 보니 이르면 내년 3~4월 전후로 테이퍼링이 끝날 수 있으며 연준이 테이퍼링 규모를 최대 두 배까지 올릴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CNBC는 “파월 의장은 테이퍼링이 얼마나 가속화할지는 말하지 않았다”면서도 “씨티그룹은 연준이 감축 규모를 두 배로 늘려 월 300억 달러씩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테이퍼링 조기 종료→금리 인상 수순 밟을 듯
이 때문에 오미크론에 급락했던 조기 금리 인상 전망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에서 보는 내년 3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은 전날 18%에서 26%로 상승했다. 5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8%포인트 오른 38%, 내년 6월까지 두 번의 금리 인상이 이뤄질 확률은 14%에서 21%로 올랐다. 미 국채 2년물과 10년물의 수익률 격차도 지난 1월 이후 가장 작은 수준으로 좁혀졌다. 월가의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테이퍼링 종료 이후에는 언제든 금리를 올릴 수 있게 된다”며 “그럼에도 연준은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은 관계가 없다고 말할 것”이라고 봤다.
파월 의장은 또 오는 14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12월 FOMC까지 2주가량 남은 만큼 그동안 나오는 지표를 들여다보겠다고 강조했다. 3일과 10일 각각 발표가 예정된 11월 고용 보고서와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염두에 둔 것인데, 월가에서는 이들 수치가 조기 테이퍼링 종료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와 별도로 파월 의장은 오미크론에 대해 “앞으로 7~10일 정도면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그 전까지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발언 역시 오미크론에 관한 치명적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긴축 방침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라는 해석이 많다. WSJ는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 전망 악화에 테이퍼링을 빨리 끝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분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