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의 생일을 맞이하는 팬덤 문화가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팬들끼리 일정 금액을 모아 스타에게 선물을 보내는 ‘조공’이 대세였다면, 이제는 ‘생일 카페’로 스타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대세다. ‘생일 카페’란 좋아하는 스타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팬들이 카페와 협업해 스타의 사진과 관련 소품으로 특정 기간 카페를 꾸미는 이벤트다. 이벤트 기간에는 연예인 이름을 딴 특별한 메뉴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팬들끼리 서로 가지고 있는 스타의 사진을 나누기도 한다. 한국만의 독특한 팬덤 문화인 ‘생일 카페’는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생일 주인공 없는 생일파티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는 그룹 러블리즈 멤버 류수정의 생일 카페가 열렸다. 카페 입구에는 류씨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과 등신대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카페 곳곳에는 류씨의 사진과 관련 소품들이 가득했고, 한쪽에는 편지를 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음료를 주문하니 류씨의 사진이 담긴 컵홀더와 함께 포토카드, 엽서 등이 선물로 제공됐다. 이날 생일 카페에 방문한 러블리즈 5년 차 팬 김모씨(28)는 “생일 카페를 한다고 해서 혼자 왔다”며 “평소 온라인에서만 보던 팬들을 실제로 보고 같은 팬으로서 동질감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문자 장모씨(35)는 “이런 행사 덕분에 팬들끼리 서로 만나고 스타의 생일을 같이 즐길 수 있어서 재밌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는 그룹 몬스타엑스 멤버 기현(본명 유기현)의 생일 카페가 열렸다. 1층은 생일 카페로 운영됐으며 2층에서는 유씨의 사진을 볼 수 있는 미니 전시회가 열렸다. 이날 카페는 주문을 위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팬들로 북적였다. 카페 내부에서는 처음 보는 팬들끼리 포토카드를 교환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 카페에 방문한 몬스타엑스 6개월 차 팬 이유진(22) 씨는 “기현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왔다”며 “생일 카페를 통해 연예인을 이만큼 좋아한다는 걸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팬 서모씨(21)는 “코로나19로 팬들끼리 만나기가 어려운데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좋다”며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한 공간에 모여 이야기할 수 있어서 즐겁다”고 전했다.
스타의 생일 카페를 여는 곳이 많아지면서 ‘생카 투어(생일 카페 투어)’라는 말도 생겼다. ‘생카 투어’란 좋아하는 스타의 생일 카페 여러 군데를 방문하는 것으로 다양한 굿즈를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몬스타엑스 팬 이모씨(23)는 기현 생일카페가 열린 지난 19일부터 3일간 카페 총 여덟 군데를 방문하는 ‘생카 투어’를 했다. 이씨는 “생일 카페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을 볼 수 있고 다양한 굿즈도 받을 수 있다”라며 “좋아하는 사람의 예쁜 사진을 보고 공통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오는 행복이 더 크기 때문에 카페를 돌아다니며 돈을 쓰는 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생카’에서 다양화하는 이벤트
좋아하는 스타를 위한 팬들의 생일 이벤트는 카페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19일 CGV 용산 아이파크몰에는 그룹 프로미스나인 멤버 노지선의 생일을 기념해 ‘노지선 관’이 만들어졌다. 이는 특정 상영관을 스타 사진으로 꾸며놓은 이벤트관으로 영화 티켓이 없어도 상영관 외부 구경이 가능하다. 노지선관에 방문한 프로미스나인 2년 5개월 차 팬 이모씨(34)는 “이벤트관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방문했다”며 “이런 이벤트를 보면 재밌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0일부터 3일간 서울 마포구 한 고깃집에서는 그룹 세븐틴 멤버 우지(본명 이지훈)의 생일 이벤트가 열렸다. 해당 고깃집은 세븐틴 멤버들이 다녀가 ‘세븐틴 맛집’으로 불리며 팬들 사이에선 ‘성지(聖地)’로 통한다. 이벤트 기간 고깃집 곳곳에는 이씨의 사진이 전시돼 있었고 생일기념 특별 메뉴로 ‘우지 세트’를 판매하고 있었다. 고깃집에서 생일 이벤트를 여는 건 흔치 않아 팬들 사이에서도 재밌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고깃집에 방문한 세븐틴 6년 차 팬 양모씨(22)는 “생일 이벤트 대부분은 카페에서 하는데 고깃집에서 하니까 신기해서 왔다”며 “실제 세븐틴이 와서 먹었던 곳이라 더 의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깃집 생일 이벤트 기획자는 “카페가 아닌 밥집에서 이벤트를 열면 재밌을 것 같아 기획하게 됐다”며 “생일 카페에 특별한 메뉴가 있는 것처럼 고깃집에도 특별 메뉴가 있어야 할 것 같아 ‘우지 세트’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팬들이 후기를 남기고 즐기는 모습 보면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점점 커지는 팬덤 영향력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국내 10대 트렌드 중 하나로 ‘팬덤 경제의 부상’을 꼽았다. 현경원은 “팬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확산 및 적용되면서 새로운 문화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며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생일 카페’가 늘어나면서 생일 카페 목적으로 대관을 해주는 카페가 늘었다. 이벤트 기간에 ‘연예인 생일 특수’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생일 카페를 운영해본 카페 사장 채모씨(34)는 “이벤트가 있으면 관련된 분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며 “평소 때보다 행사 때 매출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컵홀더 등을 제작하는 한 카페 용품 전문점 관계자도 “연예인 생일 이벤트가 활성화되면서 연예인 컵홀더 제작 주문이 많아졌다”며 “11월만 해도 주문 건수가 약 2,000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팬들이 하는 이벤트가 크게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적극적으로 팬 활동을 하면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 팬 활동이 과거보다 당당해졌다”며 “생일 카페 등 다양한 이벤트는 인터넷을 매개로 여러 가지 팬 활동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은재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팬덤 안에서 ‘홈마(홈페이지 마스터)’와 같이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이벤트를 주도했다면, 이제는 개인 팬들도 작은 카페를 빌리는 등 소소하게 이벤트를 열 수 있게 됐다”며 “관련 산업에 팬덤의 영향력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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