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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票퓰리즘에..정부마저 반발 "초법적 발상"

■ 李후보 발언 11일 만에 '방역지원금'으로 이름 바꿔 강행

전국민에 1인당 최대 25만원

꼼수 다 동원해도 재원 10조 부족

결국 국채발행 불가피..靑은 강건너 불구경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욱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선 후보가 제안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9일 공식화했다. 명칭을 ‘위드 코로나 방역지원금’으로 바꿔 내년 1월 중 1인당 최대 25만 원을 지급하는 것이 목표다. 초과 세수의 납부 유예 방식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겠다고도 밝혔는데, 정부가 초법적인 발상이라고 반발하면서 당정 간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 일상 회복과 개인 방역 지원을 위해 전 국민 위드 코로나 방역지원금을 추진하겠다”며 “내년 예산에 반영해 1월 중 최대한 빨리 국민들에게 지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제안한 지 11일 만에 당 차원에서 지급 시기까지 확정해 추진 의사를 공식화한 것이다.

민주당은 1인당 20만~25만 원 수준의 지원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10조~15조 원 정도의 재원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10조 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초과 세수분을 내년으로 미뤄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도 내비쳤다. 윤 원내대표는 “재원은 초과 세수분을 납부 유예해 내년 세입을 늘려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여당의 이같은 재원 마련 방안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도 인위적인 세금 납부 유예가 국세징수법 조항의 요건에 맞지 않는다. 초법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공무원이 자의적인 법 해석을 하면 감사를 피하기 힘들다. 종합부동산세 이외는 뾰족한 세목도 없다. 얼마가 됐건 국고로 들어와야 할 세금을 받지 않는다면 이자 부담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당정협의 절차도 무시한 채 정부에 따라오라고 하는 행태에 대해 “국가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한국교회총연합을 방문, 인사말을 하고 있다. /권욱 기자


‘대선 주자’ 신분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전 국민 지원금을 당정에 직접 지시하고 여당이 이를 불과 11일 만에 속전속결로 수용하면서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좁게 보면 재원 마련 방안이 불분명해 나라 살림에 부담을 안긴다는 것이고, 넓게 보면 정부의 예산 편성 기능을 정치 권력이 완전히 패싱하는 상징적 사건이 벌어졌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목소리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9일 “행정부 수반도 아닌 대선 주자의 말 한마디로 나라 예산안이 통째로 뒤집어진다면 예산 당국이 존재할 이유도 없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슬그머니 빠지는 형국이다. 이날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당정이 의견을 조율하면서 현명한 결론을 도출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 국민 위드 코로나 방역지원금’으로 이름을 바꿔 전 국민에게 25만 원씩 지급되는 총 13조 원의 재원 마련부터 막막하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지원금 예산을 2022년도 본예산에 반영하고 그 재원은 올해 초과 세수를 내년으로 납부 유예하는 방식으로 마련하겠다”고만 밝혔다. 올해 세수를 내년으로 미루는 것은 ‘이재명 지원금’에 들어갈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늘리겠다는 일종의 꼼수로 볼 수 있다. 초과 세수는 정상 절차대로라면 회계 결산을 거쳐 ‘세계잉여금’ 항목으로 편입된 뒤 국가재정법에 따라 △지방교부세 및 교부금 정산(40%) △공적자금상환기금 출자 및 채무 상환(30%) △다음 연도 세입 이입(30%)의 순서로 배분된다. 가령 올해 10조 원의 초과 세수가 발생하면 3조 원가량만 내년 예산에 반영해 쓸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올해 받을 세금을 내년으로 미루면 지방세 교부 의무만 남고 채무 상환으로 반영해야 할 의무는 사라져 그만큼 가용 재원이 늘어나게 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여당 대선 후보의 지원금 공약을 위해 어이없는 꼼수를 부리는 셈이다. 정의당에서 ‘매표’ 행위라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나왔다.



여기다 납부 유예하겠다는 세금의 구체적 세목(稅目)과 규모를 기재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도대체 어떤 세목을 내년으로 미루겠다는 것인지, 거기서 걷을 수 있는 세금이 얼마인지, 여당과 전혀 협의가 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여당이 재정 시스템 자체를 패싱한 것이다. 더 나아가 예산을 짜고 집행하는 행정부의 권한을 깡그리 무시하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내년 예산을 주무르는, 있어서는 안 될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유예할 세목을 억지로 만든다고 해도 올해 세금 대부분은 이미 납부가 완료돼 납부 유예의 실효가 거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국세는 크게 나눠 소득세·법인세·부가세 3대 축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사업소득세나 법인세 등 덩치가 큰 항목은 이미 올해분 납부가 마무리됐다. 미루고 싶어도 미룰 세금 자체가 남아 있지 않은 셈이다. 올해 5조 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납부 기한이 12월 15일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지방이 가져다 쓸 돈이기 때문에 납부 유예를 할 이유가 없다. 이 밖에 목적세로 분류돼 용처가 미리 정해져 있는 교통세 등도 납부 유예를 해봐야 ‘이재명 지원금’에는 반영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여당이 납부 유예와 같은 ‘꼼수’를 전부 동원해도 올해 초과 세수에서 가져다 쓸 수 있는 자금은 총 4조~5조 원 안팎에 그칠 것으로 분석된다. 지원금을 주기 위해서는 어쨌든 10조 원가량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10조 원의 부족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은 예산 심사 과정에서 강력한 세출 구조 조정을 통해 사업 예산 상당수를 삭감하던가 국채를 찍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나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업 예산을 함부로 삭감했다가 더 큰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10조 원 내외의 국채 발행을 통한 재원 조달이 유일한 해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의 한 증권사 채권운용 담당자는 “최근 금리가 급등하고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여당이 국채를 더 찍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는 어렵다고 본다”며 “국세 납부 유예 같은 실체가 모호한 말을 하는 것도 ‘일단 소나기는 피하자’는 전략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 후보와 민주당을 중심으로 최근 나라 재정의 ‘팩트’와 동떨어진 발언이 쏟아져나오자 기재부 내부에서는 여당이 말하는 초과 세수가 올해분 초과 세수가 아니라 내년도 초과 세수를 뜻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국세 수입은 338조 6,000억 원인데 이보다 40조 원이 더 걷힐 수 있다고 여당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있고, 이런 분석이 외부로 나오는 과정에서 메시지에 혼선이 빚어진 것이라는 해석이다.

최병호 부산대 교수는 “현재 상황에서 전 국민에게 똑같은 돈을 지급하는 것은 피해 회복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필요하다면 특별한 피해를 본 특정한 계층에 포커스를 맞춰야 하고 그 재원 조달 방안도 국채 추가 발행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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