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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의 미술시장, 어떤 작품을 어떻게 살 것인가

[투자냐 투기냐, 기로에 선 아트테크]

<하>어떤 작품을, 어떻게 살 것인가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박서보의 개인전을 한 관람객이 차분히 돌아보고 있다. /조상인기자




원로화가 박서보의 작품은 2005년까지만 해도 경매에서 3,000만원에 팔린 게 최고 기록이었다. 그전까지는 몇 백만원에 거래됐다. 이듬해 미술시장이 호황을 맞으며 1억5,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지만 작가의 업적이나 비슷한 시기 활동한 해외작가에 비해 작품값은 낮았다. 그러던 것이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단색화’ 전시와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등 해외전시, 경매회사의 다양한 기획전에 힘입어 재조명받으면서 2014년부터 작품값이 급등했다. 지난달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1986년작 ‘연필 묘법’이 12억원에 낙찰됐다. 1970년대에 시작된 단색조 회화 작가군을 칭하는 ‘단색화’ 열풍은 부동산시장에 빗대자면 ‘강남 은마아파트 재개발’ 만큼의 파급력을 불러왔다. 고령토 바른 캔버스를 접고 색칠하고 떼어내고 색 올리기를 반복하는 정상화의 작품은 “벽지같다”는 소리를 들으며 2005년 이전까지 경매에서 1,000만원도 넘지 못했다. 2007년 호황 때도 9,500만원이 최고 낙찰가였지만 시장의 재조명과 함께 그의 작품값은 상승세를 보였고 지난 6월 케이옥션에서는 1996년작 푸른색 작품이 11억원에 팔렸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원로작가 김종학 개인전 전경. 미술시장의 꾸준한 스테디셀러인 김 화백은 국립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2006~2007년의 미술시장 호황이 다시 돌아왔고, 올해의 호조세는 미술 향유의 저변확대와 함께 예전보다 더 젊고 적극적인 컬렉터층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투기가 아닌 ‘미술투자’를 위해서는 어떤 작품을, 어떻게 구입해야 할까? ‘단색화’ 같은 ‘잭팟’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답은 있다. 다만 미술품을 안전자산으로서의 투자처로 생각한다면 스테디셀러(Steadt-seller)를 택하고, 신뢰도(Reliability) 높은 거래처를 통하는 게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신의 취향(Taste)까지 고려한 ‘SRT’를 갖춰야 미술투자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스테디셀러 미술품은 작가의 꾸준한 활동과 작품에 대한 확고한 지지층이 있음을 뜻한다. 특히 미술시장은 전형적인 장기투자처로, 전문가들은 최소 10년넘게 작품을 보유해야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단색화’ 작가이자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RM이 좋아하는 작가로도 잘 알려진 윤형근은 2006년 이전까지 경매 거래가 전무했지만 작품이 탄탄했기에 지속적 수요가 있었다. 미술시장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작가의 연도별 최고가 기록을 보면 10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 작품값이 올랐다.

경기도미술관의 기획전 '몸 짓 말'에 선보인 이건용의 작품. 행위예술가인 이건용은 미술관에서 직접 자신의 대표작인 '달팽이걸음'의 제작을 선보였고, 이 과정을 영상과 사진으로도 남겼다. /조상인기자




경기도미술관의 기획전 '몸 짓 말'에 선보인 이건용의 작품. 행위예술가인 이건용은 미술관에서 직접 자신의 대표작인 '달팽이걸음'의 제작을 선보였고, 이 과정을 영상과 사진으로도 남겼다. /조상인기자


주요미술관과 평단의 역할도 중요하다. 미술투자를 염두에 둔 최소 1,000만원 이상의 작품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미술사적 평가’가 작품 가격과 미래가치에 영향을 끼친다. 윤형근은 지난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대규모 회고전과 이듬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포르투니미술관 개인전 이후 국제적 위상이 높아져, 해외 전속갤러리들도 러브콜을 보냈으며 작품값도 동반상승했다. 박서보·정상화도 대형 미술관의 회고전을 통해 시장적 가치가 미술사적 가치를 담보하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최근에는 1970년대 행위예술과 개념미술가로서 ‘시장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했던 이른바 ‘아방가르드’ 작가군의 이건용·김구림·이강소 등이 주목받고 있다. 이건용은 6년 전까지만 해도 경매기록이 전무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이 그의 작업을 체계적으로 다시 짚었고 굴지의 화랑인 페이스갤러리가 그를 전속작가로 발탁하면서 70대 중반의 원로가 일약 ‘글로벌 스타덤’에 올랐다. 거래가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 이 행위·개념미술에 대해 최근 경기도미술관이 적극적으로 주목했고, 내년에는 이들이 참여하는 한국미술 기획전이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등에서 열리며 수요와 가격이 꿈틀대는 중이다.

주연화 아라리오갤러리 총괄디렉터 겸 홍익대 미술경영대학원 교수는 “미술투자는 감상과 향유가 주 목적인 경우, 즐기면서 투자수익도 기대하는 경우, 투자를 최우선시 하는 경우로 나눠서 따져야 한다”면서 “투자목적에서는 아무래도 3,000만~5,000만원대 비교적 큰 자금이 필요하고, 저평가 된 ‘블루칩’ 작가를 택하는 게 안전하다. 안목이 있다면 발전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에 투자해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투기시장의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은 미술시장에도 존재한다. 기반이 약한 화랑과 딜러를 통해 그림을 구입할 때는 향후 되팔 수 있는지까지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나름의 선정과정을 거친 화랑들이 모인 ‘아트페어’에 미술투자자들의 뭉칫돈이 몰리는 것도 수요자들이 이 점을 감안하기 때문이다. 인기가 많다고 해서 특정작가의 작품이 시장에 과잉공급되는 것도 작품값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그림 파는 사람도 믿을 만한 구매자인지를 의식한다. 작가나 갤러리 입장에서 그림 소장가는 구매자 이전에 ‘후원자’이며, 금세 작품을 내다 파는 경우 가격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투자에서 ‘감상의 즐거움’은 금융상품의 이자·배당금 같은 역할을 한다. 최근 등장한 젊은 컬렉터들은 추상미술인지 구상미술인지, 애니메이션풍인지 표현주의인지 자신의 취향에 대한 기준이 예전보타 뚜렷해진 양상을 보인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떴다방 화랑’에서 ‘반짝스타’의 그림을 사서 ‘단타매매’를 노린다면 미술투자에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작가와 화랑, 작품 구매자 모두 꾸준하고 장기적인 안목이 중요하며, 특히 갤러리와 미술관이 새로운 작가군을 제시해 줄 시점이며 구매자들도 이를 잘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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