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권력의 변곡점 시기에 치러진 대통령선거는 늘 박빙이었다. 특수한 성격의 1987년 대선을 제외하면 보수와 진보는 그간 여섯 차례의 대선에서 세 번씩 권력을 나눠 가졌다. 보수/진보-진보/보수-보수/진보의 순서다. 진보·보수의 첫 집권기가 끝날 무렵 진행된 대선은 특히 치열했다. 16·18대 대선이 그랬다. 1·2위의 격차는 3%포인트 안팎에 불과했다. 권력을 잃은 5년, 권력을 쥐어 본 그 5년으로 인해 전투력이 치솟았던 탓이다. 20대 대선도 재집권과 정권 교체의 변곡점에 위치한다. 그런데도 대선 전체를 지배하는, 뭔가 압도한 맛은 없다. 이번 대선에서 지지후보가 없다는 부동층도 25% 안팎이다. 왜 그럴까. 대선 정국에 나타난 특이한 네 가지 현상이 주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먼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현재 권력, 즉 문재인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낮다. 수치로도 나타난다. 지난달 말 한국갤럽이 조사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는 ‘잘하고 있다’가 37%다. 최근 6주간 36~38% 사이를 오간다. 역대 대통령과도 차이는 확연하다. 대통령 5년차 2분기만 놓고 보면 △김영삼 8% △김대중 28% △노무현 27% △이명박 23%다. 현직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은 미래 권력에는 족쇄였다. 오죽했으면 ‘대통령 탈당 요구’가 빗발쳤겠는가. 지금은 반대다. 도리어 미래 권력이 현재 권력의 지지를 갈구한다. 압도적 지지율이 없어서다. 가상 4자 대결(갤럽 10월 4주차)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33%(윤석열-심상정-안철수), 34%(홍준표-심상정-안철수)에 그친다. 호감도 역시 32%다. 대선판을 흔들 주도권을 현재 권력이 아직 쥐고 있는 이유다.
정권 교체 여론이라도 낮을까. 상당히 높다. 한국갤럽(머니투데이 의뢰)의 최근 조사를 보면 ‘현 정권 교체 희망’ 응답은 53%다. ‘정권 유지’ 37%보다 16%포인트나 높았다. 당연히 야당 유력 후보의 지지율도 높아야 한다. 동일 여론조사의 결과는 반대다. 이 후보와의 1 대 1 가상 대결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은 모두 진다. 정권 교체의 열망을 야당 후보들이 오롯이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네거티브 선거의 영향도 있겠지만 정권 교체를 이뤄낼 정도의 경쟁력을 그들이 가졌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유권자들은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 후보는 물론 윤석열 국민의힘 유력 대선 후보가 동시에 수사 선상에 올라와 있는 것도 과거 대선과는 다른 풍경이다. 유력 대선 후보가 나란히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후보는 대장동 특혜 의혹, 윤 예비 후보는 고발 사주 의혹 등으로 공격을 받고 있다. 수사 결과 치명적인 범죄 혐의를 밝혀내면 구속도 가능하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후보를 교체해야 하는 플랜B를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심지어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구도로 대선을 치를 경우 패자는 법의 심판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명 데스매치(death match)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를 거쳤다. 야당의 유력 후보인 윤 예비 후보도 검찰총장을 거쳐 지난 6월 29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둘 다 ‘0선 국회의원’이다. 직선제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을 포함,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은 모두 국회의원을 거쳤다. 국회와의 소통·협치의 중요성도 있었지만 우리 정치가 정당을 토대로 성장해온 영향이다. 정치 신인의 부상, ‘0선 국회의원’ 대통령은 그래서 기대·위험의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은 위임받은 권력을 대리 행사할 뿐 권력 그 자체는 아니다. 주인이 최적의 대리인을 잘 골라 뽑는 것도 의무다. 우리는 선거권을 1945년 해방 직후 쟁취가 아닌 뚝 떨어진 잘 익은 홍시를 줍듯 쥐었다. 그런 탓에 1948년 첫 5·10총선 후 많은 부작용을 거치면서 선거 문화는 질적 성장을 해왔다. 2022 대선에 나타나는 네 가지의 생경한 풍경을 작은 긍정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결국은 주권자의 몫이다. 정치 수준은 국민의 수준과 비례한다고 한다. 이제는 국민의 수준도 좀 높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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