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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24시] 文 대통령의 '지르고 보자'식 종전선언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법적 구속력도 없는 정치적 이벤트

北 비핵화 선행되지 않으면 불가능

임기말 평화프로세스 성과에 집착

他당사국 견해 무시하며 밀어붙여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 선언에 대한 집착은 가히 편집증적이다. 지난 2019년 미북 하노이 핵 담판이 ‘노딜’로 끝난 후 국내외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종전 선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유엔총회는 기본이고 생뚱맞게 아세안(ASEAN)+3 정상회의에서도 종전 선언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국군의날 행사에서는 “군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을 바탕으로 ‘종전 선언’을 국제사회에 제안했다”는 연설을 했다. 지금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들은 문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종전 선언 관철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종전 선언은 정치적 이벤트이고 법적 구속력도 없다. 국제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종전은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가능하고 평화협정문 대부분은 “협정이 발효되는 이 시점부터 전쟁은 종료된다”는 문구로 시작한다. 하지만 평화협정 역시 종잇장에 불과하다. 1973년 미국·남베트남·북베트남이 체결한 파리 평화협정이 대표적 예다. 2년 후 북베트남은 평화협정을 어기고 남베트남을 침공해 베트남을 무력 통일했다. 평화협정에 앞서 실질적인 평화 콘텐츠를 만들어 지속 가능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한반도에서는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척을 우회할 수 있는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은 불가능하다.

2018년 9월 19일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평양 공동선언’에 서명했을 때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두 정상은 이번 선언을 통해 실질적인 종전을 선언했다”고 평가했다. 2018년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합의했을 때도 미국과 북한이 실질적인 종전을 선언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좌초한 것은 종전 선언을 안 해서가 아니라 북한이 프로세스 가동에 비핵화를 연계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종전 선언이야말로 좌초 상태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견인해 재구동할 수 있는 묘약이라고 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종전 선언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른바 종전 선언 ‘입구론’이다. 하지만 다른 당사국인 미국은 비핵화의 진전이 선행돼야 종전 선언이 가능하다는 ‘출구론’적 입장이다. 북한도 종전 선언 전에 일정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하니 출구론에 가깝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종전 선언은 종잇장에 불과하다”는 북한의 주장은 문재인 정부의 인식보다 더 현실적이다. 북한의 조건이 제재 해제나 한미군사훈련 중지와 같은 ‘적대 정책과 이중 잣대의 폐기’라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일정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종전 선언은 난망하고 효험도 없다는 것을 문재인 정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종전 선언을 위해 미국이 아닌 북한이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려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미국 측 인사들을 만난 후 종전 선언과 이를 위한 대북 제재 완화의 필요성에 관해 폭넓게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후 “종전 선언에 대한 한미 간 공감대가 넓어졌다” “종전 선언 문안을 협의 중”이라는 상당히 구체적인 발언이 흘러나왔다. 뭔가 나오나 싶었는데 웬걸,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우리는 (종전 선언의) 순서·시기·조건에 관해 (한국과)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며 급제동을 걸었다. 이를 두고 미국과 “시각차는 있을 수 있으나 이견은 없다”고 한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의 해석은 말장난 수준이다.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선결 조건으로 제재 해제뿐 아니라 한미군사훈련 전면 중단을 요구했다고 국회에 보고했는데 정작 박지원 국정원장은 “북한이 선결 조건 없이 종전 선언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억측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종전 선언 제안은 다른 당사국의 견해는 애써 무시하거나 왜곡하며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종전 선언에 대한 집착은 워낙 중증이라 별 약도 없어 보인다. 아니, 하나 있다. “됐으니 그만해!” 하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호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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