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지(23·NH투자증권)에게 2021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해일 것이다. 지난해까지 매년 1승씩을 올렸지만 폭발력이 부족해 보였던 그는 올 들어 우승을 ‘뽑기’처럼 찍어내는 ‘역대급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한 시즌 최다 상금 기록(27일 현재 14억 9,700만 원)을 수립했고, 시즌 상금왕과 다승왕(6승)도 조기에 확정해버렸다. 박민지를 18문 18답으로 만났다.
-올해 자신한테 해준 가장 큰 선물이 있다면.
△큰 선물이라기엔 다 자잘해서…. 먹는 걸 너무 좋아해서 그쪽으로 지출이 좀 큰 것 같기는 해요. 옷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비싼 옷을 ‘지르지는’ 않고. 노후 준비 잘해야 하잖아요.
-20승이 목표라고 했죠. 진짜 달성하면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사실 20승 하면 은퇴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가까워져서(현재 10승). 20승 하면 아마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거나 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선수는 매년 1승밖에 못해’라고 쓴 ‘댓글러’를 만난다면.
△“저 올해 6승 했는데 보셨어요?”라고 묻고 싶어요.(박민지는 댓글이 자극이 돼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골프 외에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나요.
△골프 빼고는 사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수영은 꼭 배워보려고요. 물을 무서워해서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어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성격은.
△MBTI(성격 유형 검사) 해보면 ‘ESTJ’라고 나오던데 실제랑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고집 엄청나게 세고 남의 말 잘 안 들으려 하고. 지나치게 계획적이라 한 달 뒤까지 계획이 짜여 있어야 마음이 편해요.
-경기 중에 어떤 말을 되뇌나요.
△‘할 수 있다’ ‘넣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정말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요.
-롤모델이 있나요.
△스윙에 있어서는 임희정 선수, 퍼트랑 쇼트 게임은 김효주 선배님이 롤모델입니다. 희정 선수는 스윙이 정말 좋아서 따라하고 싶고, 효주 선배님의 그린 플레이랑 그린 주변 플레이는 너무 부러워요.
-징크스가 있나요.
△징크스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일부러 미역국도 먹고 4번 골프공도 쓰고요. 가족들이 더 신경 쓰는 것 같아요. 저 생각해서 미역국도 안 먹어요.
-코로나19가 사라지고 하루 동안 완벽한 자유가 주어지면 뭘 하고 싶나요.
△친구들이랑 놀이공원 갈 거예요.
-시즌 뒤 계획은.
△운동 엄청나게 많이 하고 잘 먹고 잘 자기. 지난 겨울에 정말 열심히 운동했는데 그 효과가 전반기 끝나고 다 사라져버리더라고요. 유통기한이라도 있는 건지. 그래서 이번에는 더 열심히 하려고요. 시즌 끝까지 효과가 이어지도록. 내년부터는 대회 기간에도 운동에 포커스를 맞추고 게을리하지 않을 겁니다.
-해외 진출 계획은.
△아직은 준비가 안 됐다는 생각입니다.
-골프가 지긋지긋했던 기억도 있나요.
△컷 탈락할 때마다 그런 기분이 좀….
-‘죽기 전에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 하는 나만의 버킷리스트는.
△세계 여행요. 1년 동안 80개국씩 돌고 이런 거 있잖아요.
-지금까지 해본 가장 큰 일탈은.
△시즌 끝나고 친구들이랑 술 마신 것. 주량이 소주 1병 정도인 줄 알았는데 평소에 잘 안 먹으면 주량도 줄어드나 봐요. 맥주 한 모금에 핑 돌 때도 있어요.
-박민지에게 ‘엄마’란.
△엄마는 정말 그냥 뭐랄까 엄마예요. 생각만 해도 눈물 날 때가 있고 또 어
떤 땐 화가 나기도 하고. 엄마들은 ‘애 낳고 키워봐야 엄마 마음 알 거다’라는 말 많이 하시잖아요. 근데 그 말뜻이 뭔지 지금도 조금은 알 것 같아요.(박민지의 어머니 김옥화 씨는 올림픽 핸드볼 은메달리스트로 딸의 매니저를 자처하고 있다.)
-올해 들은 최고의 칭찬은.
△한국여자오픈 마지막 홀 플레이를 두고 어떻게 두 번째 샷을 그쪽으로 쳤냐며 누군가 놀라워하셨는데 그게 저한테는 최고의 칭찬이었어요. 소극적인 플레이가 나올 때면 그때 생각을 하면서 ‘내가 뭐가 두려워서 지금 이러고 있지’라고 스스로 다그쳐요.
-올 시즌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87~88점? 아니다, 93점요. 지난 4년간 우승한 것보다 올해 더 많은 우승을 하고 상금 기록도 세우면서 꽤 훌륭한 일들을 해냈으니까 너무 낮게 매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7점을 뺀 건 컷 탈락이 너무 많아서요. 잘 안 될 때도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는 선수가 돼야죠. 그러려면 집념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골프는 언제까지 하고 싶나요.
△바뀔 수 있지만 일단은 서른 살까지로 생각하려고요. 저 우리 나이로 스물 넷인데 12년을 골프만 쳤거든요. 서른 이후의 인생은 다른 걸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막연하지만 공부 열심히 하고, 영어도 배우고 유학도 가고. 어느 기사에서 이런 내용을 봤어요. 우리말만 하면 5,000만 명과 대화할 수 있지만 영어를 하면 70억 명과 얘기할 수 있는 거라고. 영어 배워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요.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