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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기업규제' 대책은 없이 "K-동맹" 성과 홍보한 文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코로나 방역·성장률 호평 반해

성과 못낸 부동산은 간략 진단

檢·언론개혁도 직접 언급 삼가

"감당하기 어려운 목표" 라면서

온실가스 40%감축 관철 의지도

野 "고장난 라디오" 일제히 비판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며 신산업의 ‘K동맹’을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작 기업들이 요구하는 규제 개혁 관련 언급은 피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K반도체’ ‘K배터리’ ‘K바이오’ ‘K수소’ ‘K조선’ 등을 나열하며 “정부는 주요 산업별 지원 전략으로 강력히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업들도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산업별 K동맹을 구축해 어느 때보다 강고하게 협력하고 있다”며 “범국가적 역량을 모아 대응한다면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말을 맞은 만큼 연설에서 새 비전 제시보다 국정 성과를 홍보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특히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우리 소재·부품·장비 산업이 자립하는 역전의 기회로 바꿨다”고 자평하면서도 국내 규제 개혁에 관한 발언은 없었다.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는 2030년 온실가스를 지난 2018년 대비 40%까지 감축하겠다는 목표 역시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에너지 구조를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강행 의지를 내비쳤다.

남은 임기 동안 코로나19 극복에 매진하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위기’ ‘경제’ ‘회복’ ‘코로나’라는 단어를 각각 33번, 32번, 27번, 15번이나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장밋빛만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되고 첨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기술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초고속 성장을 해온 이면에는 그늘도 많다. 세계에서 저출산이 가장 심각하며 노인 빈곤율, 자살률, 산재 사망률은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라고 진단했다. 605조 원에 달하는 예산과 관련해서는 “추가 확보된 세수를 활용해 국민들의 어려움을 추가로 덜어드리면서 일부를 국가채무 상환에 쓰겠다”며 "재정 건전성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동산, 최고의 개혁 과제”라면서…대장동 의혹엔 침묵

이날 문 대통령 연설은 무엇보다 지난 4년 6개월간 현 정부가 이뤄낸 성과 홍보에 집중적으로 방점이 찍혔다.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경제 회복을 남은 임기 6개월간 국정 최대 과제로 삼으면서 다른 문제들은 대부분 간략히 언급하는 데 그쳤다. 무엇보다 정권 내내 국민들이 가장 괴로워하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언급 비중을 줄이고 발언 수위도 낮춘 점이 눈에 띄었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감당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산업계의 목소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그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부동산 문제를 두고 “여전히 최고의 민생 문제이면서 개혁 과제”라는 짧은 진단만 내렸다. 부동산 시장이 현재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에 따라 어떤 해법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삼갔다. 지난 5월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기자회견에서 “지난 4·7 재보궐선거를 통해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심판을 받았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한 것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던 셈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부동산 시장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단호하다”고 강조한 점과 비교해도 발언 강도가 한참 낮았다. 임기 말에도 집값은 여전히 고공 행진을 벌이고 있는 데다 임대차 3법 이후 전세 시장마저 뒤틀리자 성과로 내세울 게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언급을 피하면서 정치적 중립 논란을 의식한 듯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역시 거론하지 않았다. 검찰·언론 개혁 등 다른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직접 언급을 삼갔다. 남북 관계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북한 관련 내용도 지난해 시정 연설 때보다 대폭 줄였다.

그러면서 2030년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까지 감축하겠다는 목표는 그대로 관철하겠다는 생각을 재차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에 배출 정점에 도달한 우리나라로서는 단기간에 가파른 속도로 감축을 해야 하는 매우 도전적인 목표”라면서 “기업 혼자서 어려움을 부담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설득했다. 문 대통령은 “기업도 스스로 생존과 미래 경쟁력을 위해서 과감히 나서고 있다”며 “절약·재활용 습관화, 대중교통 이용, 일회용품·플라스틱 줄이기, 나무 심기, 재생에너지 사용 등 국민도 행동으로 나설 때”라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기업 규제 등에 대한 전향적 대책을 자제하는 대신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지친 국민들에게 희망을 던지는 메시지에 연설의 초점을 맞췄다. 문 대통령은 “세계적인 코로나 위기 속에서 K방역은 국제 표준이 됐고 대한민국이 방역 모범 국가로서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며 “백신 접종은 늦게 시작했지만 국민의 적극적 참여로 먼저 시작한 나라들을 추월했다. 전체 인구 대비 1차 접종률 80%, 접종 완료율 70%를 넘어서며 세계 최고 수준의 접종률을 달성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또 11월 이후 단계적 일상 회복을 거론하고 “국민의 평범한 일상이 회복되고 위축되었던 국민의 삶에 활력을 되찾을 것”이라며 “특히 방역 조치로 어려움이 컸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영업이 점차 살아나고 등교 수업도 정상화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와 관련해서도 정권 재창출과 교체의 기로에 선 시점에서 현 정부 성과 대부분을 스스로 호평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비상 경제 체제로 신속하게 전환해 과감하게 대응한 결과 주요 선진국 중 코로나 위기 이전 수준을 가장 빨리 회복했다. 지난해와 올해 2년간 평균 성장률이 가장 높을 전망”이라며 “수출은 올해 매달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해 무역 1조 달러를 이달 안으로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역설했다. 이어 “소비와 투자도 활력을 되찾고 있고 가장 회복이 늦은 고용에서도 지난달 위기 이전 수준의 99.8%까지 회복됐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 의장단, 여야 지도부와 20여 분간 환담을 갖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여영국 정의당 대표, 정진석 국회부의장 등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이 국회에 입장해 환담장으로 향하는 동안에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장동 게이트 특검’을 촉구하는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도열해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해마다 제가 직접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었고 취임 첫 해에 추경예산안 시정연설을 해서 6번을 했다”며 “예산안 시정연설을 전부 다 한 사람은 내가 최초”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 예산은 다음 정부의 첫 예산이기도 하다. 코로나 완전 극복, 경제 회복, 민생 회복, 일상 회복 등 굵직한 국정 과제들이 대부분 다음 정부에서 계속되어야 할 과제들”이라며 “이번 예산안에 대해서 초당적으로 잘 협의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이재명 발언 팩트체크’ 간담회에서 김기현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고장난 라디오처럼 자화자찬” 혹평

국민의힘 등 야당에서는 25일 문 대통령 연설에 대해 “고장 난 라디오처럼 자화자찬을 틀어댈 수 있는가”라며 혹평했다. 부동산·국가채무 등 국민들이 느끼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경제는 폭망했고, 부동산 값은 천정부지 올라 주택 지옥이 돼 있는데 반성은 찾아볼 수 없는 자화자찬 일색이라 매우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늘 연설을 지켜봤다”고 평가했다. 같은 당 허은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아가자)’이라는 신조어를 이 정권의 콘셉트로 잡은 모양”이라며 “국민들은 제발 정권 교체를 해 달라고 아우성인데, 대통령은 오늘도 과거를 미화하기 바빴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1,000조 원 규모의 국가채무와 예산 낭비 등을 지적하며 “생색은 자신들이 내고, 책임은 다음 정권, 나아가 미래 세대에게 전가하겠다는 무책임의 극치다.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한 예산 심사로 이 정권의 안이한 재정 인식과 무책임을 단호히 바로잡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국민의당은 물론 정의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안혜진 국민의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대선을 앞두고 미래 세대의 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포퓰리즘 정책이 쏟아지는 가운데, 대통령은 국회에서 ‘세계 최초 손실보상법’을 자랑하기에만 바빴으니 국민들은 복장이 터질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오로지 정권 재창출에만 전념해온 집권 여당의 대통령답게 과도한 국가채무로 인해 다가올 청년 세대의 불안감 따위는 전혀 공감하지 못한 연설이었다”고 직격했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문 대통령은 K방역 등 10가지가 넘는 화려한 K시리즈 속에 정작 어두운 K불평등은 말하지 않았다”며 “자화자찬 K시리즈에 가려진 K불평등은 외면한 연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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