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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징어게임' 박해수 "스스로 의심할 때 얻은 전 세계 피드백, 터닝포인트 됐죠"

'오징어게임' 박해수 / 사진=넷플릭스 제공




배우 박해수에게 ‘오징어게임’은 터닝포인트다. 막막했던 시점에 전 세계에서 뜨거운 반응을 보여줬고, 지금까지 해온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위로의 메시지가 됐다. 스스로 의문이 생기던 시기에 명쾌한 답변을 받은 그는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얻었다.

지난달 17일 전 세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박해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해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고객의 돈까지 유용했던 투자에 실패해 거액의 빚더미에 앉은 인물 상우 역을 맡았다. 상우는 어릴 적 동네 형이었던 기훈(이정재)과 함께 게임에 참가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우승만을 향해 달려 나간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극단적 상황에서 캐릭터들의 심리가 변화하는 과정들이 재밌게 느껴졌어요. ‘인물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흥미로웠죠. 소재 자체도 신기했고요. 실제로 완성된 작품을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비주얼적인 모습이 나오고, 음악을 비롯해 많은 것들이 추가되면서 극적이고 스릴 넘치는 게 잘 표현됐더라고요.”

‘오징어게임’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신드롬급 인기를 끌고 있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딱지 치기’ 같은 한국 어린이들의 놀이가 해외에서 유행하고 있고, SNS에서 각종 패러디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한국 작품 최초로 넷플릭스 미국 오늘의 톱10 1위에 오르고, 전 세계 80여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작품을 찍으면서 자신감은 컸는데, 이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좋은 반응이 있을지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도 더 알려지고, 그 콘텐츠를 함께 만들어 나갔다는 것 자체로 감사해요. 저도 작품의 결과나 코멘터리 같은 반응을 즐겨 보고 있거든요. 호불호도 나뉘고 상우 역할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야기들 모두 기억에 남아요.”

/ 사진=넷플릭스 제공


상우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남을 밟고 일어서기도 하지만, 편견 없이 파키스탄 노동자 알리(아누팜 트리파티)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한다. 박해수는 이런 상우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공감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우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려 하고 노력하다 보니, 상우 캐릭터 자체를 애정하게 됐다.

“‘달고나 뽑기’ 게임에 대해 미리 알고서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 알리를 속이는 것들이 스스로 이해가 됐어야 했어요. 그런데 사실 멀지 않은 생각이더라고요. 어느 부분은 저도 내면에 갖고 있던 생각들이기에 그걸 표현했던 것뿐이죠. 상우는 죄책감을 많이 느끼고 있지만 경쟁 사회에 치열하게 뛰어들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합리화를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죄책감이 왔을 때 합리화로 바꾸는 그런 모습들을 쫓아가며 연기하려고 했어요.”

상우에게 기훈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다. 박해수는 상우가 어렸을 때부터 한 동네에서 자란 형 기훈을 동경했을 거라고 말했다. 상우는 늘 주변에 사람이 있고 좋은 사람인 기훈을 자신이 넘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그에 대한 자격지심과 질투심에 쌓여있을 거라고. 한편으로는 잊고 싶은 가난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라 멀리하고 싶었을 거라고 정의했다.

“상우는 성장하면서 경쟁사회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물질만능주의와 ‘1등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는 가치관을 갖게 됐어요. 누군가를 밟고 가야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죠. 그런데 상우는 게임장에서의 기훈을 보고 박탈감과 자격지심 때문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아마 패배자라고 느꼈을 거예요. 마지막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 또한 그 선택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걸 거예요.”

상우를 연기하며 심리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든 점도 많았다. 감당할 수 없는 빚에 쫓기면서 어머니에게 전화로 이별을 고하는 장면은 심리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과연 그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대본에 없는 말을 내뱉으려고 했지만, 누군가가 오면서 끝내 말을 전하지 못했다.

“기훈과 피에 물든 운동장에서 싸울 때는 체력적으로도 가장 힘들었어요. 비도 많이 맞고 너무 추웠는데 이정재 선배님과 서로 계속 뜨거운 물을 부어줬어요. 둘만의 액션신이어서 영광스럽기도 하고 기분이 좋았지만, 너무 힘들어서 가장 기억에 남아요.”



/ 사진=넷플릭스 제공


작품 속 상우는 냉정하고 개인주의자이지만, 촬영장에서의 박해수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이정재는 앞서 인터뷰를 통해 “박해수가 덩치와는 다르게 귀여운 면이 많고, 유머러스하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이에 박해수는 친근하게 다가와 준 이정재 덕분에 기분 좋게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공을 돌렸다.

“촬영장에서 제가 중간 위치여서 이래저래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했어요. 낯을 많이 가리는 스타일인데 이정재 선배님 얘기를 많이 해주시고 동생들도 워낙 좋았어요. 오히려 정호연(새벽 역)이 분위기 메이커였어요. 알리도 저보다 한국말을 더 잘해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고요.”

“예전부터 오영수 선생님이 국립극단 무대에서 작업하시는 걸 봐왔거든요. 동경하며 바라왔던 선생님과 함께 작업하는 게 영광이었어요. 현장에서 남다른 호흡으로 무게감을 가지고 계셔서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요.”

“(정)호연이는 사실 첫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품에 대한 이해도나 고민을 많이 해온 친구예요. 캐릭터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고, 인간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굉장히 남다르게 좋은 호흡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시즌2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시즌2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상우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박해수가 시즌2에 출연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박해수는 시즌2에 출연하는 상상도 해봤다고.

“상우가 주식을 하기 전에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대한 과거 장면을 만들어주시면 어떨까 생각해보긴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제가 죽음을 선택해서 못 나오는 건 개인적으로 아쉽지만, 상우가 나온다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하죠. 개인적으로는 가면남들의 세계가 궁금해요.”

'오징어게임' 박해수 / 사진=넷플릭스 제공


박해수는 ‘오징어게임’의 흥행과 동시에 득남까지 하면서 겹경사를 맞았다. 열심히 여러 작품을 찍었지만, 공개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두려움이 많아진 상태였기 때문에 더 값진 결과다.

“항상 연기를 할 때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느낌을 많이 들어요. ‘오징어게임’을 공개하기 전까지 그랬어요. 제가 하고 있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많았죠. 배우는 어느 정도 피드백이 있어야 힘이 나거든요. 그러지 못하니 답답하고 겁이 나는 시점이었는데 정말 좋은 소식이 들려와 감사해요. 개인적으로 좋은 일도 있어서 감사함을 만끽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아들이 저랑 똑같이 생겨서 더 신기해요.”(웃음)

‘오징어게임’을 통해 슬럼프를 극복한 박해수는 곧바로 새로운 모습으로 시청자들과 만난다. 30일 OCN 드라마 ‘키마이라’가 첫 방송되고,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 한국판, ‘수리남’, 영화 ‘야차’가 기다리고 있다.

“제가 그렇게 오랫동안 연기를 하진 않았고, 다수의 작품을 하지 않았는데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작품으로 인사드리면서 많은 분들이 저란 존재를 알아주셨고, 오랜 시간 있다가 ‘오징어게임’이라는 작품으로 또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게 됐어요. 저한테는 몇 안 되는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저한테 아주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많은 분들이 작품을 잘 봐주시고 득남도 해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지만, 저에게 중요한 건 앞으로 하나하나 밟아갈 길이 많다는 것이에요. 지켜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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