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노동이사제 도입과 예비타당성 조사를 무력화할 수 있는 법안들을 정기국회 내에 밀어붙이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또다시 ‘입법 폭주’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관련 법들이 업계 등과의 이견을 좀처럼 좁힐 수 없어 문재인 정부 내내 공전을 거듭한 만큼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된다. 야당의 반발로 사회적 합의안을 도출하기 쉽지 않지만 여당은 현 정부 국정과제를 입법 성과로 완수하겠다는 계획이다. 의석수만을 믿은 입법 폭주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정기국회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1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최근 정기국회 대비 국회의원 워크숍을 열고 현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 중 미완 부분을 점검했다. 당시 논의 테이블에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공 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올라왔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와 관련된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은 지난해 김경협·김주영·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순차적으로 발의했다. 박 의원의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박 의원안은 공공 기관이 상임이사 중 노동이사를 2인 이상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법안소위에 계류돼 있다.
그동안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이 소위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노동이사제를 둘러싼 의견 차가 좁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정안을 발의한 민주당과 달리 야당은 노동이사제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앞서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1월 열린 기재위 소위에서 “이 제도가 만일 공공 기관에 도입된다면 민간 부문에도 그 영향력이 확대돼 여러 가지 문제점이 혹시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며 “좀 신중하게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재계 역시 노동이사제가 민간 기업에도 적용될 경우 경영권이 침해돼 기업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워크숍에서는 예타 대상이 되는 총사업비 기준을 500억 원 이상에서 1,000억 원 이상으로 높이는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논의됐다. 현행법에서 예타는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거나 재정 지원액이 300억 원 이상인 신규 사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이는 김대중 정부 때 정립된 기준으로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국가재정법 개정안 역시 기재위 소위에 머물러 있다.
민주당은 개정안이 지역 사업 개시를 용이하게 해 균형 발전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정안을 발의한 홍성국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예타 관련 공청회에서 “코로나19 국난 극복을 위한 경기 부양과 실질적인 국가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려는 것”이라고 발의 목적을 설명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개정안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균형 발전 효과는 크지 않은 데 반해 세금 낭비로 미래 세대의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1999년 예타가 도입된 것은 공공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예산 낭비를 막는 취지였다”며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예타를 계속 후퇴시키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꼬집었다. 개정안이 대선을 앞두고 재정 건전성보다 지역 표심을 의식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이와 함께 민주당은 워크숍에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 △재정준칙 도입을 골자로 한 국가재정법 개정안 △양도세 비과세 기준 금액을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상향하도록 한 소득세법 개정안 등을 입법 과제로 언급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노동이사제나 예타 문제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처럼 공론화된다면 민주당이 멈칫할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두 사안은 일반 국민이 깊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멈칫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현 정부 여당은 쟁점 법안에 대해 의견이 갈리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신경 썼다면 그동안 법안들을 밀어붙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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