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 복무하는 부사관 A 씨는 요즘 친지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곤혹스럽다. 군과 관련한 성폭력, 부실 급식, 장비·장구류 불량, 청해부대 34진 집단감염 사태 등 불미스런 이슈들이 연일 터진 탓이다. 영관급 장교인 A 씨는 “미국은 군인에 대해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집단으로 예우한다”며 “군복을 입는다는 게 부끄러운 나라가 돼선 안 된다”고 개탄했다. 대내외적으로 흠집난 군의 위상, 흔들리는 군기·군심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군의 위상 문제가 가장 큰 위기 요인이라는 것이 군 인사 분야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병역제도 관련 업무를 맡는 한 당국자는 “병역 자원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어서 이를 보완하려면 유급 지원병을 확충하고 여성의 군 복무 확대를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군이 사회적으로 낙후되고 부조리한 집단으로 낙인 찍히면 양질의 인재를 확보하기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실추된 위상과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인권침해나 방산 비리 등의 문제 발생 시 공익 제보자나 피해자가 믿을 수 있는 신고 채널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군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보 및 신고 접수 조직과 조사·수사 조직이 군 수뇌부 및 각 부대 지휘관의 입김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조직을 개편하고 독립성을 뒷받침할 근거 입법을 마련해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흔들리는 군기 문제도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군내 각종 부조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웹사이트 등 온라인 미디어을 통해 수시로 외부에 공개된다. 이에 일선 부대 지휘관과 간부들 사이에서는 혹시나 자신의 부대에 대해서도 부조리 제보나 사고가 터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가급적이면 사병들 터치하지 말라’는 식의 보신주의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군내 부조리를 외부에 제보하는 사례는 점점 느는데 이 과정에서 군 보안 사항이 유출되도 누구 하나 징계를 하려 나서지 않고 있다. 군의 한 당국자는 “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장병들이 외부에 고발하며 부조리 척결에 나선 것이겠지만 이 과정에서 군 관련 시설이나 작전 관련 내용 등이 직간접적으로 새어나가는 문제가 생긴다”며 “이것은 군 사이버보안 규정 위반이어서 정보 보안 교육을 강화하고 유출자를 처벌해야 하지만 일선 군 지휘부는 물론이고 국방부나 합참·안보사령부 모두 조용히 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다가는 군이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대응하기에 바쁜 ‘포퓰리즘 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 예비역 장성은 “군의 본연 임무는 적에 대비해 안보를 지키고 유사시 싸워서 이기는 것인데 요즘 시류를 보면 군 지휘부에서부터 일선 부대 간부에 이르기까지 여론의 눈치만 보고 할 말조차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육군의 한 부대 지휘관도 “실전에서 싸워서 이기는 부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가 코로나19 핑계로 훈련 규모는 축소하고 군비를 확장해도 모자를 판에 북한을 달래느라 군비 통제 운운하는 것을 보면 답답할 따름”이라며 “아무리 첨단 무기를 갖춰도 군기가 무너지고 훈련이 부족하면 전쟁에서 승리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군 안팎에서는 훈련과 전투 대비에 소극적인 청와대 안보실과 국방부와 합참 등 군 수뇌부의 자세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명분으로 군비 통제, 한미 연합 훈련 축소, 대북 자극 표현 및 정책 희석 등과 같은 조치를 단행하면서 당국자들 스스로 ‘북한이 불편해 할 정책이나 발언은 삼가야 진급하겠구나’라는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의 한 영관급 장교는 “현 정부 들어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합의 성과를 치적으로 내세우려 하다보니 북한은 합의만 하고 사실상 이행하지도 않고 있는 군비 통제를 우리 스스로만 따르고 있다”며 “군비 통제 다음은 결국 군축인데 북한은 재래식 전력을 군축해도 핵을 가지고 있지만 재래식 전력만 갖고 있는 우리가 똑같이 군축을 하면 대북 핵억지력을 상실하는 불균형에 빠진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영관급 장교는 “북핵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구축했던 ‘3축 체계’를 현 정부가 ‘핵·WMD대응체계’라는 용어로 치환하면서 기존에 3축 체계에서 북한의 심기를 거슬렸던 킬체인, 대량응징보복(KMPR)과 같은 공세적 표현을 순치하고 수세적인 용어로 중화시켰다”며 “이런 행태 하나하나가 북한의 강압 전략에 말려들어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평화를 구걸하는 행태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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