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수 부풀리기’ 의혹이 불거진 한국ABC협회의 신문 부수공사를 정부광고 집행, 언론보조금 등에 정책적으로 활용하지 않기로 했다. 협회에 지원한 공적자금의 잔액 45억원도 환수할 방침이다. 정부는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열독률·구독률과 언론의 사회적 책임 관련 지표 등을 토대로 정부광고 집행 기준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ABC협회 사무검사 조치 권고사항 이행점검 결과 및 향후 정부광고제도 개편계획’을 밝혔다. 그간 신문 등 인쇄매체에 정부광고를 집행할 때 신문사 대상으로 조사해 온 ‘부수’ 항목을 빼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ABC협회의 부수공사를 통해 집계한 발행부수, 유료부수 등의 통계를 작년 기준 총 1조893억원의 정부광고 중 2,452억원 가량의 인쇄매체 광고집행의 근거자료로 써 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진행 중인 신문 우송비 지원(16억원), 소외계층 구독료 지원(18억원) 등의 보조금 사업, 지역신문발전특별법 지원 대상 요건에도 이 통계가 쓰였다.
문체부는 지난 3월 ABC협회에 권고한 사항에 대해 지난달 말 제출 받은 최종보고를 토대로 권고사항의 이행 여부를 점검한 결과 총 17건 중 2건만 이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나머지 10건은 불이행, 5건에 대해 이행 부진 판정하며 종합적으로 볼 때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문체부는 평가했다. 앞서 문체부는 부수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되자 사무 검사를 벌였으며 지난 3월 부실 조사를 확인하고 전반적인 제도 개선을 권고하면서 불이행 시 정책적 활용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황 장관은 “(3월에) 추가 조사할 필요가 있어서 공동으로 지국 조사를 하는데 ABC협회가 협조 자체를 안했다”며 “세금으로 정부광고가 집행되므로 당연히 신뢰성이 담보돼야 하는데 지난 3개월 동안 협조에 전혀 의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광고를 집행할 때 평가기준으로서 부수의 대체재는 구독자를 상대로 집계하는 구독률, 열독률이다. 문체부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을 통해 전국의 국민 5만명을 대상으로 대면조사 형식의 구독자 조사를 실시해 구독률과 열독률을 집계할 계획이다. 또한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정정보도) 건수와 자율심의기구 참여·심의 결과 등 언론의 사회적 책임 관련 자료도 핵심지표로 쓴다. 참고지표로도 포털제휴, 기본 현황, 인력 현황, 법령준수 여부 등의 객관적인 복수 지표를 활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광고법 및 시행령을 개정한다. 오는 10월까지 시행령을 개정하고, 12월까지 법을 개정해 관련 조항에서 ‘부수’를 빼고 ‘구독자 조사 및 사회적 책임’을 넣는다. 이를 통해 내년부터 정부광고 집행 등에 새로운 기준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 횟수, 자율심의기구 심의 결과 등을 정부광고 집행기준으로 쓰는 게 원래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직권조정을 피하기 위해 계속해서 결정을 미룰 가능성이 있어서 신속한 피해구제라는 목적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황 장관은 “언론계와 협의해 보완하고 꼼꼼하게 설계하도록 하겠지만 언론사 스스로 책임을 관리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활용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정부기관인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구독자 조사를 벌인다는 점에서 정부의 입김이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는 대면조사로 이뤄질 뿐 아니라 기간도 2~3개월가량 걸리는 동안 모두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시비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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