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종로구 인사동에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를 포함해 15∼16세기에 제작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이 발견됐다. 또 물시계 부속품으로 추정되는 동제품과 천문시계 부품, 조선시대 화포인 총통(銃筒), 동종(銅鐘)도 발견됐는데 이들은 모두 금속 유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29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금속활자와 물시계 부속품 추정 유물만 도기 항아리에 담긴 채로 발견됐고, 상대적으로 큰 나머지 유물은 주변에서 출토됐다. 활자를 제외하면 모두 일정한 크기로 부러뜨린 채 묻은 것으로 확인됐다. 활자 중 일부는 불에 타 엉겨 붙어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유물이 나온 지점은 종로2가 사거리, 탑골공원 서쪽이다. 종로 뒤편에 있는 작은 골목인 피맛골과 인접한 땅이다. 이곳은 조선 전기까지 한성부 중부 8방 중 하나로, 경제·문화 중심지인 견평방(堅平坊)에 속했다고 한다. 주변에는 관청인 의금부와 상업시설인 운종가가 존재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유물이 확인된 곳의 유구(遺構·건물의 자취)는 고고학적으로 큰 의미를 둘 만한 장소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발굴조사를 맡은 수도문물연구원 관계자는 "건물터 형태를 보면 매우 특이하다"며 "관(官)이 지은 건물은 아닌 듯하고, 평범한 일자형 혹은 ㄱ자형 창고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수습한 유물이 일반 민가에서 소유할 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점에서 출토 위치가 상당히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유물 매장 상황을 봤을 때 누군가가 금속품을 모아 고의로 묻었고, 나중에 녹여서 다른 물건으로 만드는 '재활용'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수도문물연구원 관계자는 "도기 항아리를 기와 조각과 작은 돌로 괸 것을 보면 인위적으로 묻은 정황을 알 수 있다"며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화포인 소승자총통이 1588년에 만들어져 가장 늦은 편인데, 1588년 이후 어느 시점에 한꺼번에 묻었다가 잊혀서 다시 활용되지 못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그는 "구리는 조선시대에도 비싼 금속이었다"며 "유물을 재화, 즉 값나가는 물건으로 인식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누군가가 유물을 모아서 폐기했을 수도 있다"며 "금속 유물을 무더기로 묻은 이유는 추가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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