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작품을 설명하는 텍스트는 일절 없다. ‘관람객이 각자 보고 들리는 대로 관람하길 희망한다.’ 작가가 갤러리에 보내왔다는 한 줄의 메시지가 작가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출신의 뮤지션이면서 영화(음악) 감독 겸 배우로도 활동하는 백현진. 박제된,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되는 무엇을 거부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해 온 이 ‘캐릭터 부자’가 3년을 준비한 개인전 ‘말보다는(Beyond Words)’을 통해 미술가로 돌아왔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작품을 설명하는 텍스트를 배제했다는 점이다. 회화·조각·설치·음악·비디오·공연·대본·퍼포먼스·연기 등으로 구성된 작품 60개를 선보이는데 갤러리 본관과 별관의 4개 공간에 걸린 작품 주변 어디에도 작품을 설명하는 안내문, 심지어는 작품명도 붙어 있지 없다. 관람객은 눈 앞의 캔버스 속 선과 색, 형상에 스스로의 상상력을 더해 전시를 완성할 수 있다. “전시를 보러 다니면서 본 텍스트가 솔직히 재미도 없고, 오히려 (감상에) 방해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백현진은 지난 3일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기자간담회에서 ‘설명 없는 전시회’를 기획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그렇다고 작품의 이름이 모두 ‘무제’인 건 아니다. ‘멋진 뒷골목’, ‘굴러가지 않는 날’, ‘자살 방지용 그림: 타일 한조각’ , ‘당신의 억장’ 등 작품 목록만 슬쩍 훑어봐도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 만큼 재치있고, 구체적인 이름이 있다. 백현진은 이들 제목을 “작품에 붙인 별명이요 애칭”이라고 했다. 그는 “‘무제’라고 하기엔 현대미술에서 이 단어가 지닌 강력한 신호가 있지 않느냐”며 “그냥 ‘이거’, ‘저거’ 식의 이름이 편하기도 하지만, 언어를 다루는 것을 (내가) 재밌어하는 것도 있어 별명을 붙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평소 유화를 많이 그려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시도도 선보인다. 별관(PKM 플러스) 1층 전시 공간에 자리한 작품들은 작품명이 모두 ‘생분해 가능한 것’이다. 언젠가 분해돼 자연 속으로 사라질 작품들이다. 그는 “유화는 유럽에서 귀족들이 ‘영원함’을 욕망하며 만들어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료 자체가 가진 목표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전 세계 정보를 뒤져 자연에서 분해 가능한 재료를 찾아 손에 쥐니 비로소 마음 편히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는 “쿨한 부자가 작품을 사서 보다가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진짜 멋질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무엇 하나로 규정할 수 없고, 또 그리 살지 않으려는 ‘백현진다움’을 진하게 만나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7월 3일까지 PKM 갤러리에서 열린다. 오는 19일과 7월 3일에는 전시 일환으로 퍼포먼스와 라이브 음악 공연도 펼친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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