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마리의 물고기가 자리한 만어산(萬魚山)이라는 지명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경남 밀양 만어산에 가면 산사태가 난 듯 경사진 골짜기를 가득 메운 돌무더기를 볼 수 있다. 이는 과거 빙하기를 거치며 다양한 크기의 암석들이 중력에 이끌려 경사면을 천천히 이동한 후 안정화된 것으로 암괴류(岩塊流)라고 한다. 수많은 돌이 깔린 비탈을 뜻하는 순우리말 ‘너덜겅’이나 ‘돌강(돌이 강처럼 흐른 모습)’으로도 불린다.
크고 작은 암석들이 줄지어 무리를 이룬 모습은 용왕의 아들(미륵바위)과 그를 따르던 수많은 물고기 떼가 돌로 변했다는 전설로 남았다. ‘삼국유사’에는 불법의 감화를 받은 동해의 용과 물고기가 돌로 변해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돌마다 경쇠(옥이나 돌로 만든 악기) 소리가 났다고 전해진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으며 세종 때는 악기를 만들기 위해 이 돌을 시험했으나 고른 음이 나지 않아 그만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암괴류를 이루는 크고 작은 바위를 두드리면 종을 친 듯 맑고 경쾌한 소리가 나는데 이는 각 바위의 암석학적 특징과 바위 사이의 공간 분포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지금도 경석(輕石), 종석(鐘石)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다.
‘어산에 깃든 부처님 그림자’라는 어산불영(魚山佛影)의 신비를 간직한 이곳에는 천년고찰 만어사가 자리하고 있다. 커다란 고래가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민 듯한 형상의 미륵바위 위에는 미륵전이 건립돼 신성시되고 있다. 이 바위는 풍화작용으로 지표에 노출된 독립 암괴인 토르 지형에 해당한다. 이처럼 약 3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만어산 암괴류는 독특하고 뛰어난 경관을 지닌 자연유산으로서 한반도의 지질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학술적 가치와 더불어 역사성이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정승호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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