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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좋은 법령을 만들기 위한 동행

이강섭 법제처장

이강섭 법제처장




규칙 없는 집단은 없다. 암묵적일 수도, 명시적일 수도 있지만 집단에는 규칙이 존재한다. ‘정해진 틀이 없다’는 것도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하나의 규칙이다. 두 사람 이상의 관계는 합의의 토대 위에서만 건강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각종 모임의 회칙, 공동주택의 관리 규약, 국가의 법령은 모두 각기 다른 집단의 규칙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양한 규칙을 따르고 있지만 이를 손수 만들어 본 사람은 많지 않다. 동호회의 회칙을 만든다고 상상해보자. 가장 먼저 써야 할 내용은 무엇일까. 왜 모이는지 목적을 적어 동호회의 성격을 밝히고 누구를 회원으로 할지를 정하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 운영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고 어디에 사용할지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회원 중 누군가 동호회 활동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해결할지도 정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각자가 허용된다고 생각하는 행위의 범위도 다르고 이를 표현하는 방법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회칙 위반자에게 부과할 벌금이나 활동 정지, 강제 탈퇴 등의 제재 처분은 더욱 민감한 사항이다.

법령 만들기는 법을 만들고 해석하며 집행하는 공무원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일단 광범위한 적용 대상으로부터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고 직접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입장도 헤아려야 한다. 동시에 변화할 미래까지 내다보며 적시에 필요한 법령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무리 유능한 공무원에게도 힘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법제처의 ‘법령입안지원’은 법령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공무원들의 어려움을 줄이고자 시작했다. 부처의 정책을 위해 법제 전문가인 법제처가 힘을 보태는 것이다. 좋은 정책은 좋은 법령을 통해 구현된다. 법령입안지원의 최종 수혜자가 국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법제처는 부처가 만든 법령 안이 정책의 내용을 명확하고 적절하게 담고 있는지, 다른 법령과 충돌하는 부분은 없는지 등을 면밀히 검토한다. 법령입안지원은 시급한 현안에 대응할 때 더 유용하게 활용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사재기가 있었던 지난해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 고시인 ‘마스크 긴급수급조정조치’에 대해 신속히 법적 쟁점을 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해줌으로써 수급 체계 안정화와 국민 불안 해소에 기여할 수 있었다. 지난 2011년부터 지금까지 1,800여 건의 법령 안을 검토해 자문 의견과 대안을 제시했다. 회신 내용은 실제 입법 추진 과정에서 98% 반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올 3월 시행된 ‘행정기본법’은 법령에 대한 지속적인 정비·개선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규정하고 있다. 일선 공무원들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법제처가 이를 뒷받침하겠다. 우리 국민에게 좋은 법령과 정책이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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