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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선언' 명시했지만…바이든 "北 비핵화에 환상없다"

■한미정상회담-대북정책 기대반 우려반

공동성명서 '외교·대화 통한 단계적 접근' 유화책 불구

바이든 "절대 말만 가지고 판단 안해" 北 선조치 강조

北, 인권 거론에 반발하며 국지도발·버티기 나설 수도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 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소인수 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워싱턴DC=연합뉴스




한미 정상이 대북 정책에 대해 대화와 외교를 통한 접근법을 강조한 가운데 북미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비핵화 조치가 이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단계적 해법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최종 달성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하면서도 북한의 핵 무기 동결 등 책임 있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한미 정상은 또 공동성명에서 “2018년 판문점 선언과 북미 싱가포르 선언 등 기존 토대 위에 외교와 대화를 통해 단계적 접근으로 풀겠다”고 대북 유화 메시지도 내놓았는데 북한이 이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다. 북한을 대화로 이끌 구체적인 방안이 없고 북한의 인권 문제를 공동성명에 담은 것이 북한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싱가포르 선언 반영했지만, 북한 태도 변화 촉구=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 시간) 한미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을 외교적으로 포용하고자 하는 그런 의지를 갖고 있다”며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실용적인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이날 대북특별대표로 성 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대행을 지명했다. 성 김 대표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북핵 6자회담 특사를 지내는 등 북핵 문제에 대해 폭넓게 인식하고 있는 외교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성 김 대표의 임명 발표는 깜짝 선물”이라며 “그동안 인권 대표를 먼저 임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으나 대북 비핵화 협상을 더 우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미국은 앞서 지난달 대북 정책과 관련 외교와 압박을 함께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날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외교와 대화를 통한 해법을 강조했을 뿐 대북 제재 등 압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북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바이든 행정부가 남북·북미 간 대화를 통해 비핵화를 달성하고자 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반영했고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유도하기 위해 신경을 기울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과 바이든 대통령의 기자회견 등을 보면 미국이 대북 정책에서 상당히 양보한 모습이 분명히 드러난다”며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기 위해 문구와 표현에서 상당한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대북 정책의 큰 틀에서는 외교적 해법으로 풀겠다고 했지만 각론을 살펴보면 북한의 태도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메시지가 뚜렷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제가 절대로 안 하는 것은 그 사람(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말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핵 프로그램의 단계를 낮춰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북한 비핵화와 관련,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며 “그(김 위원장)가 바라는 것을 다 주지 않을 것이며 국제사회에 합법 국가로 인정받는 것은 쉽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잘라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시의 과오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며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김 위원장에게 대북 협상을 진전시키려면 성의를 보이라고 뚜렷한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선적대시 해제 요구…‘최대한 버티기’할 듯=전문가들은 한미 양국이 북핵 문제를 외교로 풀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지는 미지수라고 보고 있다. 북한은 미국에 적대시 정책을 우선 철회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데 이번 정상회담에는 대북 유화책과 관련 구체적인 방안이 거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예민하게 여기는 인권 문제 등이 공동성명에 포함된 것은 오히려 북한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 교수는 “북한은 이번 한미정상회담 메시지 중에 특별히 매력적으로 들릴 만한 유인책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자국의 인권을 거론한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은 이에 따라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국지적 도발을 하며 긴장감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 역시 “북한은 미국에 적대시 정책 철회를 계속 요구하고 있는데 바이든 행정부가 이와 관련해선 특별히 내놓은 대책이 없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협상 테이블에 앉을 명분이 없을 것이고 이에 따라 남북·북미 간 경색 관계는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 제재와 자연재해 등으로 식량난을 겪고 있지만 자력으로 국제적 고립을 버텨낼 힘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북한이 빠른 시일 내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평가다. 박 교수는 “북한은 현재 경제난 극복 등 내치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북한이 경제난을 자력으로 이겨낼 힘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최대한 버티기로 나서며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DC=공동취재단, 서울=강동효 기자 kdhy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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