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월 시행되는 ‘중대 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구체적인 기준을 담은 시행령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산업재해가 많은 대기업과 공공 기관들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이나 공공 기관과 달리 관련 인력이 부족하고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중소기업들은 당장 ‘발등의 불’을 어떻게 꺼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기업들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공항공사가 중대재해법 대응 예산으로 15억 원을 편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항공사는 지난 15년 동안 중대재해법 처벌 기준인 산업재해 사망 사고가 한 건에 불과한 우수 공공 기관이다. 공항공사처럼 산재 사고가 적은 공공 기관도 기존 안전 예산 대비 적지 않은 예산을 편성한 만큼 여타 기업들의 인력과 예산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17일 서울경제가 공항공사가 지난달 확정한 ‘중대재해종합예방계획안’을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공항공사는 중대 재해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사업장·건설·시설물·운영 등 26개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총 15억 4,170만 원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이 예산에서 시설물 안전 점검이 7억 1,520만 원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공항공사 관계자는 “아직 중대재해법이 시행되지 않아 최소 예산을 미리 추정했다”며 “법이 시행되면 예산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공항공사는 18개 사업장에서 2,558명, 3개 자회사에서 4,546명이 근무하고 있다. 근로자와 작업장 규모에 비해 안전 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항공사는 2006년 산재 사고로 한 명이 사망한 후 지난 15년 동안 관련 사망 사고가 한 건에 불과한 사업장이다.
공항공사의 사례를 보면 다른 공공 기관이나 기업들도 중대재해법 대응을 위한 인력과 예산을 늘려 편성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산재 사고가 많은 사업장은 인력과 예산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공공 기관과 공공 기관이 발주한 작업장에서 발생한 사고성 산재 사망자는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전력공사 각 6명 등 총 41명이다.
공공 기관, 대기업보다 인력·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중소기업은 중대재해법 대응이 쉽지 않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은 대기업처럼 안전 관리 책임자나 안전 관리 전담 부서를 둘 여력이 없다”며 “정부가 컨설팅 비용과 같은 중소기업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경영계는 중대재해법으로 안전 규정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강화되고 있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의무 규정은 1,222개에 달한다. 산재 사고는 50인 미만 근로자 기업 등 영세 기업에서 발생하는 빈도가 높기 때문에 중소기업 대표들은 중대재해법을 위반해 처벌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크다. 건설 업체의 한 관계자는 “공장 내 작업이 관리될 수 있는 제조업과 달리 강풍과 같이 돌발적인 자연현상이 나타나는 건설 현장의 특성을 고려한 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달 중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하고 다음 달 중 확정할 방침이다. 경영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영난을 고려해 시행령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의무 위반으로 경영 책임자가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범위를 한정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산재 사망 사고가 잇따르자 노동계에 이어 정치권까지 중대재해법을 강화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고용부도 최근 기업에 대한 특별 감독 관리를 강화하는 등 안전 감독의 고삐를 죄고 있다.
/세종=양종곤·박홍용 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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