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제약사 모더나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위탁생산(CMO)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의 추가 국내 공급에 관심이 쏠린다. 화이자·모더나 등이 개발한 mRNA 백신은 뛰어난 안전성과 효능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높다. 국내 역시 다양한 개발 방식의 백신을 도입할 예정이지만 화이자 백신이 가장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오는 21일(현지 시간)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에 참여해 백신 생산 및 공급 협력을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mRNA 백신 추가 도입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한국거래소의 ‘풍문 또는 보도에 대한 해명’ 공시에서 모더나 백신을 국내에서 위탁생산한다는 소식에 대해 “현재 확정된 바 없어 확인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대응은 최근 업계에 ‘화이자 mRNA 백신 위탁생산’ 관련 풍문이 전해졌을 때와 사뭇 다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당시 공시를 통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탁생산 가능성을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았으며 “추후 확인이 가능한 시점 또는 1개월 이내에 재공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서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또 21일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 존 림 사장이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다는 소식까지 알려지면서 위탁생산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 백신의 위탁생산을 맡으면 국내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아스트라제네카·노바백스), 한국코러스컨소시엄(스푸트니크V)에 이어 세 번째로 해외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하게 된다. mRNA 방식으로 개발된 백신을 생산하는 것은 처음이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 송도 공장에는 단일 항체 치료제 외에는 코로나19 백신 제품을 생산할 만한 설비가 없다. 이에 따라 모더나의 백신 위탁생산을 맡아도 ‘병입(DP)’ 단계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기술이전이 이뤄지면 1년 이내에 생산을 위한 공정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는 물론 제약·바이오 업계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성공적인 협상이 이뤄져 조기에 코로나19를 극복하고 한국이 ‘백신 생산 허브’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 민주당 소속인 앤디 김 연방 하원 의원에 따르면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최근 김 의원과의 면담에서 백신 공급 문제와 관련해 “한국을 우선순위에 두고 논의하겠다”며 “한국에 대한 백신 지원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해리스 부통령은 또 “문재인 대통령 방미 전에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백신 관련 협력에 대한 내용이 발표될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에서 외교력을 총동원해 단순 위탁생산을 넘어 mRNA 등 백신 관련 기술이전 약속을 받아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술이전을 받으면 국내에서 백신을 생산할 때 물량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백신 주권’도 앞당길 수 있다. 하지만 모더나 등 글로벌 백신 기업들은 기술이전을 주저하고 있다. mRNA 기술은 코로나19 백신뿐 아니라 다양한 의약품에 활용할 수 있어 확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백악관 2인자가 한국에 백신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기술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엄중식 가천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하나를 개발하는 데는 사실상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며 “자체적으로 기술을 만드는 것보다는 기술이전을 통해 여러 노하우를 습득하고 그 기술력으로 발판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과 별개로 국산 mRNA 기술 확보를 위한 개발에 착수하기로 했다. 단기 물량은 위탁생산이나 기술이전을 통해 충당하고 중장기 물량은 토종 mRNA 백신을 개발해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제2부본부장은 이날 “mRNA 백신 개발에 참여 의사가 있는 기업을 파악한 결과 올해 중 임상을 추진하겠다는 기업이 4곳, 내년까지 추진하겠다는 기업이 11곳 정도”라며 “부처별 지원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17일 mRNA백신전문위원회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간 위탁생산과 기술이전 외에도 ‘국내 기업의 mRNA 백신 개발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전문가들도 접종 후 나타나는 이상 반응 통계뿐 아니라 추후 감염병에도 mRNA 백신 플랫폼이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감염병이 장기화하고 여러 차례 백신을 접종해야 할 경우에는 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아스트라제네카 백신)보다는 mRNA가 널리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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