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이 4·7 재보궐선거 패배 요인을 조국 사태·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부동산 정책 실패로 진단한 내부 보고서를 11일 당 의원들에게 배포했다. 민주당 재선 의원 일부는 송영길 당 대표에게 조국 사태에 대해 반성해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송 대표 취임 이후 당직 인선에서도 친문이 대거 배제되는 등 재보궐선거 전 극소수의 의견이었던 '쇄신론'이 당 전반에서 힘을 얻고 있다.
12일 민주당에 따르면 서울시당 위원장인 기동민 의원은 지난 10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4·7 재보궐선거 패배 이유를 분석한 FGI(Focus Group Interview) 보고서를 당 의원 전원에게 전달했다. FGI 조사는 소수 응답자와 집중적인 대화를 통해 정보를 찾아내는 방식을 말한다.
지난달 17일부터 23일 간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FGI 조사는 총선부터 재보궐선거까지 민주당 지지를 유지해 온 '잔류민주'그룹과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지지로 돌아선 '전향 민주'그룹, 재보궐선거 때 투표하지 않은 '탈동원' 그룹으로 나눠 진행됐고, 이를 다시 20~30대와 40~50대로 나눠 총 6그룹을 면접했다.
민주당 지지를 철회한 이들은 선거 패인을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이슈 △검찰개혁 △부동산·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건 △박 전 시장 성추문 △코로나19 대응 및 대북·대중국 정책 △젠더 갈등에서 찾았다.
이번 선거에서 오 시장을 찍었다는 한 20대 여성은 "현 정권의 위선을 제대로 보여준 게 조국 사태라고 생각한다"며 "현 사태의 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전향 민주그룹 40대 남성은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한 번도 민주당이 아닌 적이 없었다"며 "문재인 정부가 조국 사태 이후 국회의원 선거를 거치면서 국회의원 안에 있는 위원장들을 다 야당에 주지 않고 본인이 가져가면서 최근에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까지 검찰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독재"라고 비판했다.
총선과 재보궐선거 두 번 다 민주당을 지지한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조국 사태에 대한 시각이 엇갈렸다. 50대 한 남성은 "수구 세력들이 현 정권을 흠집내려고 크게 만든 이슈가 조국"이라고 주장한 반면 30대 여성은 "조국을 감싸면 안 됐다. 명확하게 잘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검찰개혁 이슈에 대해서는 "민주당에서 말하는 검찰개혁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의견이 다수 나왔다. '전향 민주' 그룹의 한 20대 여성은 "적폐가 적폐를 떄려잡겠다고 하는 걸로 밖에 안된다"고 말했고 40대 한 남성은 "자기 구미에 안 맞으니까 계속 찍어 내리려고 했던 추태"라고 꼬집었다. 30대 한 여성은 "부동산도 그렇고 지금 사람들의 기본생게가 흔들리게 생겼는데 가상의 적을 세워놓고 쉐도우복싱하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이슈에 대해서는 "벼락거지"나 "서민의 상실감" 등 허탈감에 대한 표현들이 많이 나왔다. 총선 민주당 지지자였으나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기권한 한 30대 여성은 "서민으로서 상실감을 많이 느꼈다. 평생 모아도 저거 살 수 없겠구나"고 털어놓았다. 전향그룹 한 30대 여성은 "12평짜리 아파트에 가서 문 대통령이 애 두 명까지 키울 수 있겠다고 하는데 진짜 자기가 결혼해서 12평에 살면 그런 말이 나올까. 뭐 하자는 거지"라고 지적했고 한 30대 남성은 "정책 하나 내려면 모든 경제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 맞대고 하나 내놓기도 너무 어려운데 정부에서 27번, 28번씩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는 건 제대로 생각을 안 하고 만든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시장 성추행 사태에 대해서는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을 가장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박원순 시장 성희롱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민주당을 뽑는 건 진짜 아니다" "박원순 시장이 자살을 했는데 그런 경우 본인이 출마를 안 시키겠다고 얘기했으면 지켜야 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물론 당의 입장도 여러 가지 있겠지만 너무 실망이 크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송 대표를 중심으로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재보궐선거를 계기로 당이 사과할 문제는 사과하고 당청 관계는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송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재선 의원들과 가진 비공개 간담회에서 "국회의원 180여 명을 놓고 청와대 정책실장이 강의하듯 하는 것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 대표는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두고 "내로남불의 극치"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재선 의원들 사이에서도 청와대 중심의 정책 추진에 대한 비판들이 터져나왔다. 조응천 의원은 "상임위 간사를 해보니 주요 정책이 상임위 위주가 아니라 위에서 정해져서 내려오더라"고 발언했고 유동수 의원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도 하나하나 따지지 않은 탓에 당이 청와대 정책을 수행하기 바빴다"고 했다.
위성곤 의원은 조국 사태와 관련해 "대선 승리를 위해선 과거에 대해 분명하게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자폭탄을 받은 2030 초선 의원들을 두고 "초선 5적이라고 하는데, 5적인지 당을 위해 반성한 의적인지 판단해야 한다"며 "저는 그들이 의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송 대표는 취임 이후 당직 인선에서 '친문' 색을 뺴면서 쇄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송 대표는 최근 주요 당직인 당 사무총장에 3선의 윤관석 의원, 수석대변인에 고용진 의원, 대표 비서실장에 김영호 의원을 임명했다. 윤 의원은 송 대표가 인천시장이던 당시 인천시 대변인을 맡은 '송영길계'로 분류된다. 고 의원과 김 의원은 계파색이 옅다는 평가다. 정책위의장에는 원내대표 선거 과정에서 '쇄신'을 외친 박완주 의원을 임명했다.
당 대변인에는 이용빈 ·이소영 의원을 임명했다. 이소영 의원은 "말하던 것만 말하면 민주당에는 미래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밝힌 대표적인 2030 소신파 의원으로 꼽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송 대표가 당직 인선에 있어서 계파 색이 뚜렷한 사람은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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