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명재상으로 불린 황희·맹사성·최명길이 오늘날 서울시장인 한성판윤을 지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성과 한음에 나오는 한음 이덕형과 암행어사 박문수, 종두법을 보급한 지석영도 한성판윤으로 일했다.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과 애국열사 민영환도 한성판윤 출신이다.
1395년 조선은 한양부를 한성부로 개칭한 뒤 수도 한성을 총괄하는 직책에 한성판윤을 뒀다. 한성부가 서울특별시청이고 한성판윤이 서울특별시장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도지사와 광역시장에 해당하는 관찰사와 부윤이 종2품이었고 판윤은 이보다 한 단계 높은 정2품의 고위직이었다. 서울시장이 지자체장 중 유일하게 장관급 대우를 받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조정의 중신 회의에 참석했던 한성판윤은 지금의 서울시장보다 권한이 많았다.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 소속이었고 행정·사법·치안을 모두 담당했다. 왕이 행차할 때는 한성 경비까지 책임졌으니 오늘날 대통령 경호처의 역할까지 일부 맡았다. 워낙 현안과 업무가 많다 보니 국무총리 격인 영의정보다 한성판윤으로 일하기가 더 힘들다는 말까지 있었다.
한성판윤의 위상은 조선 말 갑오개혁을 전후로 급격히 추락했다. 16년 동안 70명이 바뀌었고 1849년에는 반나절 만에 그만둔 한성판윤도 있었다. 1890년에는 한 해에 25명의 한성판윤이 교체됐다. 국정이 혼란스러울수록 지자체장의 업무가 과중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제38대 서울시장이자 제2072대 한성판윤에 당선됐다. 문재인 정부 최대 실책인 부동산 정책을 바로잡겠다고 공언했지만 갈 길은 험난하다. 서울시 구청장 25명 중 24명, 시의원 109명 중 101명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구청장과 시의원을 설득하지 못하고 불협화음만 낸다면 서울시정의 후퇴는 명약관화다.
조선 시대에도 부동산은 첨예한 사안이었다. 1536년 한성판윤이었던 서지는 “더는 판윤 노릇을 못하겠다”며 임금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백성들이 한 치의 땅을 두고 연일 싸우고 자기에게 불리하면 상대에게 오만한 말을 퍼붓는 것에 지쳤다는 게 이유였다.
민생과 직결되는 부동산 정책에 대전환을 선언한 오 신임 시장은 만년지계를 보고 추진해야 한다. 단기간에 부동산으로 성과를 내려다가 치유 불가능한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다. 선거 기간 내내 참신한 공약 대신 상대 흠집 내기만을 마주해야 했던 국민의 정치 혐오증이 임계치에 달했다는 점도 부담이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수령은 오로지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일갈했다. 시장은 민생을 최일선에서 어루만져야 하는 자리라는 것을 오 시장은 가슴에 새겨야 한다. 뺄셈의 정치가 아닌 덧셈의 정치를 만나고 싶은 것은 모든 서울 시민의 소망이다.
/이지성 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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