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특급열차’로 불렸던 역대 서울시장들. 1995년 국민이 직접 투표를 시작한 이후로 서울시장 자리는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들이 거쳐가는 자리로 불리곤 했는데요. 2021년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맞아 그동안 어떤 인물들이 민선의 역사에 함께 했는지, 역대 정책이 뭔지 한 번 보실까요.
여러분 판관 포청천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진한 눈썹을 가진 공명정대의 대명사죠. 우리나라 민선 서울시장에도 ‘서울 포청천’이 있었습니다. 바로 최초의 민선 서울시장인 조순인데요. 하얀 눈썹이 눈에 띄는 생김새, 강직한 성격을 지녀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죠. 경제학자였던 조순 전 시장은 정계에 뛰어들어 최초의 시장이 된 후, ‘시민중심’을 강조했어요. 전국 최초로 사회복지조사를 실시하여 시민복지 5개년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죠. 또 민선시장이란 정치적 입지를 바탕으로 중앙정부와 강하게 대립해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했습니다. 하지만 대선출마를 위해 서울시장직에서 사퇴하며 아쉽게 임기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서울시장 자리에 오른 민선 2기는 제 31대 고건입니다. 어디서 들어봤다구요? 서울경제썸 영상 ‘그때 서울이요···? 개발로 발 디딜 틈 없던 그 시절 역대 시장들은 뭐 했을까’를 보신 분이라면 익숙하실 거예요. 관선과 민선 서울시장을 모두 역임한 그는 2번의 국무총리도 한 인물로 대통령 빼고 다 해본 사람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의 키워드는 그때나 이때나 ‘청렴’인데요. 민원처리 온라인 공개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고 반부패 국제심포지엄을 여는 등 서울시의 반부패, 클린행정시책을 해외에 수출하는 공을 세웠죠.
다음은 우리에게 서울시장보다는 제 17대 대통령으로 더 익숙한 사람이죠. 제 32대 이명박입니다. 현대건설의 사원에서 이사, 사장을 거쳐 회장까지 한 후 정계에 뛰어들었죠. 당시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며 서울시장에 당선! 기업 CEO 출신답게 시정운영에 경영 마인드를 도입했어요. 당시 낯설지만 신박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감탄을 불러온 사업이 있는데 바로 ‘대중교통 환승제’입니다. 서울 시내에서 차를 자주 갈아타며 비용을 지불해야했던 사람들에게 ‘유레카’를 외치게 했죠. 이 외에도 간선과 지선으로 버스 노선체계를 개편하고, 중앙버스전용차로를 설치하는 등 대중교통 체계를 전면 개편했어요.
서울시장 이명박하면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있죠. 바로 청계천 복원 사업입니다. 그 당시 박정희 정부 때 지어진 청계 고가가 노후되고 붕괴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어요. 이를 복원해달라는 시민들의 니즈가 점점 커졌고 이 전 시장은 취임 1년 후인 2003년 7월에 바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약 2년 만에 공사가 끝났고 청계천은 47년 만에 도심을 흐르는 생태하천으로 재탄생했죠. 이는 서울 도심의 명소로 자리잡고 상징적인 공간으로 꼽히며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을 그의 최대 업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관련 논란이 몇가지 있었죠. 먼저 전문가와의 갈등입니다.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의 생태계 복원 의견을 배제했다는 것인데요. 그들은 원래의 물길을 되살리는, 말 그대로 ‘복원’을 원했지만 사실상 ‘개발’이었단 입니다. 한강물과 지하수를 끌어다 써 하천이 아닌 호수를 연상시키고,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둑부터 광통교, 영조시대 때 세웠던 호안석축까지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를 없앴다는 점에서 복원이 맞느냐는 의문이 나왔죠.
다음은 소상공인들과의 갈등입니다. 청계천 복원 이전에 해당 일대에는 대규모 상가가 존재했었는데요. 수많은 소상공인들이 있었죠. 그들의 보금자리를 없애는 일이기에 보상의 일환으로 ‘가든파이브’라는 대규모 복합쇼핑센터로의 이주 지원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영업손실 보장이나 착공연기 등의 직접적인 보상은 배제된 채 진행되었죠. 그마저도 상인대책 전담기구가 가든파이브 완공 전에 사라지기도 했어요. 심지어 가든파이브는 기존 청계천 상인이 들어가기엔 너무 고액이었고, 허허벌판에 상가만 덩그러니 있다 보니 장사도 잘됐을리 없겠죠. 이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인도 등장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습니다.
또 이 시장 때 시작된 굵직한 서울사업, 바로 ‘뉴타운’ 사업입니다. 낡은 주택가를 헐고 새 아파트를 짓는다는 점, 거기에 도로 등 공공기반시설까지 계획에 포함시켜 새로운 도시 재개발이란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는데요. 은평, 길음, 왕십리 등 34곳을 뉴타운 지역으로 지정하며 서울시를 뛰어넘는 전국적인 ‘히트상품’이 됐습니다. 2006년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까지 제정하며 임기 만료 후 대권에 도전해 대통령직까지 거머쥐었죠.
이명박 전 시장의 개발 바통을 받아 이어 달린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번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도전장을 내민 후보죠. 제 33, 34대 오세훈입니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 ‘그것이 알고싶다’ 등의 방송에 출연한 스타 변호사였어요. 법조인이자 방송인으로 투잡을 하던 그가 쓰리잡을 택했습니다. 바로 2006년 7월 서울 시장에 선출되며 그의 본격적인 정치 인생이 시작됐는데요.
이때 서울은 개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주요 주택 정책은 ‘장기전세주택 Shift‘였는데요. 쉬프트는 주변 전세시세의 80% 이하로 최장 20년 간 내집처럼 살 수 있는 주택입니다. 기존 임대아파트의 틀을 바꿔 좀 더 넓어진 면적에다 같은 단지 내에 분양을 배치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애려는 시도였어요. 이 때문에 2009년엔 유엔 해비타트가 선정하는 특별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비록 청약 자격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전세금과 까다로운 신청자격, 중산층 우선이라는 논란때문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재정적인 부담으로 2017년 폐지 절차를 밟기 전까지 인기를 끈 정책이었습니다.
오 전 시장은 주택 뿐 아니라 국제적 이미지를 고려해 서울을 디자인하는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 광화문 광장 조성, 한강르네상스 사업 등이 주요 사업이었죠.
하지만 동대문디디피의 경우엔, 수차례 계획 변경, 당초 예정된 공사비에서 실제 투입까지 심사가격이 6배 폭등하며 서울시에 적자고민을 안기게 한 애물단지가 됐죠. 또 그만큼의 활용 가치가 낮은데다 83년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동대문운동장을 없애면서까지 만들었기에 아쉬움이 크다는 평가입니다.
또 경복궁 앞 차로 가득한 공간을 광장으로 바꾼 ‘광화문 광장’도 말이 많습니다. 광화문광장 사용 관련 조례에 따르면 사용 허가를 서울시가 임의로 변경할 수 있도록 되어있어 ‘광장에서의 집회’를 봉쇄해버렸단 목소리가 나오는데다, 건축 공간을 고려하지 않는 개발로 ‘최악의 개발’로 꼽히는 등 ‘오세훈의 정원’이란 비판도 나왔었죠.
디자인 서울의 핵심 계획인 한강 르네상스 사업도 한번 볼까요? 한강을 시민 품으로 돌려준다는 취지로 한강 주변 경관과 문화시설,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업인데요. 서울항, 한강예술섬, 세빛둥둥섬이 대표적입니다. 워터프론트타운 조성을 위해 마곡지구를 개발하고, 용산국제업무지구 건설을 추진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역시 순탄치 못 했어요.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터지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많은 사업들이 휘청이며 기존 계획을 이어나가기 힘들어졌습니다. 치솟던 아파트값도 떨어지며 전세가 매매가를 추월하는 등 역전세난도 심각했죠.
게다가 당시 민주당의 ‘무상급식’ 정책을 반대하며 서울시장 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하는 등 주민들의 원성과 함께 2011년 오 시장은 시장직에서 사퇴하게 됐습니다. 오 전 시장은 이번 출마를 앞두고 당시 중도사퇴는 과오였다고 발언하기도 했죠.
제 35, 36, 37대 서울시장 박원순은 인권변호사로 시작하여 정치인이 최초의 3선 시장입니다. 개발보다는 복지와 도시재생을 강조했죠. 취임 후 첫 번째로 결재한 사안이 초등학교 5·6학년 무상급식 지원인 만큼 복지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펼쳤어요.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를 만들고 청년과 신혼부부를 향한 지원을 확대했죠.
박 전 시장은 2012년 임기하자마자 “임기 내에 새로운 뉴타운 지정은 없다”며 사실상 뉴타운 정책 폐지를 발표했는데요. 대신 ‘도시재생’을 키워드로 서울의 낙후된 공간을 재생한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보수하여 보행길로 만든 ‘서울로 7017’과 폐쇄된 석유비축기지를 문화공간으로 만든 ‘문화비축기지’가 대표적이에요.
옛것을 보호한다는 평가도 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한 사례로 용산구 서계동의 경우, 2007년 뉴타운 후보지로 지정됐지만, 2012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으로 뉴타운에서 해제됐고, 2017년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도시재생으로 또다시 개발 허가가 안나며 사업이 이도저도 아닌 붕 뜬 채로 남아있게 된 것이죠. 도시재생이란 이름도 주민들의 벽화만 그려지고 정작 필요한 주거환경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또 오락가락 행정으로도 논란이 일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세운지구’가 있는데요. 세운지구는 2006년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되어 주변 8개 구역을 대규모 통합개발될 계획이었지만, 뉴타운 사업이 무너지고 수년째 사업이 멈춰있다 ‘다시 세운 프로젝트’로 도시재생사업 대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때 171개 중소 규모 구역으로 쪼개 분할 개발하는 식으로 내용이 달라졌었는데요. 그 안에서 구역 해제와 관련하여 서울시의 입장은 계속 바뀌어 주민들의 희생은 나날이 커졌죠. 결국 89개의 구역은 해제되고 나머지는 도시재생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대책이 2020년 4월 발표돼 많은 생계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습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소통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사업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인물로 남게 됐죠.
47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70년간 이어져온 서울시장사. 역사 속에 업적과 오명을 오르내리며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대통령 다음으로 막강한 권한과 영향력을 지닌 서울시장이 다음에 어떤 정책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칠지 정책을 꼼꼼히 살펴보고 투표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정수현 기자 value@sedaily.com, 한상우 인턴기자 sw7015@sedaily.com, 이현지 인턴기자 hyunji167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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