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에 노출돼 질병을 얻은 노동자가 향후 발생 가능한 다른 병의 치료비까지 포함해 위자료를 받았더라도, 이후 추가로 다른 병이 발생하면 치료비를 또다시 청구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울산지법 민사15단독 장지혜 부장판사는 근로자 A씨가 자신이 근무했던 석면 제품 제조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6,400만원 상당 지급 판결을 내렸다고 23일 밝혔다.
1970년대 석면공장에서 8년가량 근무한 A씨는 30년 뒤인 2008년 석면폐증 진단을 받았다. 이에 회사를 상대로 "사측이 안전을 소홀히 해 질병이 생겼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해 위자료와 치료비 등 4,200만원가량을 지급받았다. 그런데 A씨는 10년쯤 뒤인 2017년 추가로 악성중피종(악성 종양) 진단을 받아 항암치료를 시작했고, 치료비 7,100만원 상당을 사측이 지급해야 한다며 재차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에서 회사 측은 2008년 석면폐증 관련 소송 당시 향후 악성중피종 발병 우려까지 포함해 치료비와 위자료를 지급한 것이므로 추가 배상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첫 재판 당시 향후 악성중피종 발병 소지가 있고, A씨가 치료비를 추가로 요구하지 않은 점이 위자료 지급 참작 사유로 인정된 바 있다.
그러나 추가 소송을 맡은 재판부는 당시 A씨에게 악성중피종이 언제 발생해, 치료 기간과 비용이 얼마나 필요할지에 대한 감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앞선 판결을 보면, 석면에 처음 노출된 후 20∼40년이 지나 악성중피종 진단을 받기도 한다"며 "A씨가 첫 재판 당시 향후 발병 우려가 있는 악성중피종에 대한 치료비 청구를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원고도 스스로 안전을 살펴야 할 의무가 있었다는 점에서 피고의 책임을 90%로 제한했다"고 덧붙였다.
/박신원 인턴기자 shin0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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