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 돌아왔다.
‘필드의 슈퍼맨’ 브룩스 켑카(31·미국)가 1년 6개월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전 세계 랭킹 1위 켑카는 8일(한국 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TPC 스코츠데일(파71)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피닉스 오픈에서 합계 19언더파 265타로 우승했다. 3라운드까지 선두에 5타 뒤진 공동 7위였던 그는 이날 4라운드에서 이글 2개과 버디 3개(보기 1개)로 6언더파 65타를 몰아쳐 역전극을 완성했다. 1년 6개월의 우승 가뭄 끝에 나온 통산 8승째다. 상금은 131만 4,000 달러(약 14억 7,000만 원). 말 없고 평범한 청년 같지만 필드에 서면 슈퍼맨 같은 괴력을 뿜는 켑카는 지난 2015년 PGA 투어 첫 우승을 거둔 바로 그 무대이자 석 달 만에 ‘유관중’으로 치러진 대회에서 부활을 알렸다. 세계 랭킹도 13위에서 12위로 끌어올렸다.
전날 밤 유럽 투어 사우디 인터내셔널에서 세계 1위 더스틴 존슨(미국)이 우승한 뒤 이에 질세라 켑카가 승전보를 전하면서 남자 골프의 ‘스트롱맨 전성시대’는 더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50야드 장타를 앞세운 브라이슨 디섐보(미국)가 US 오픈에서 우승하고, 그에 버금가는 장타를 보유한 존슨이 마스터스를 제패하는 사이 조용히 성적을 끌어올리던 켑카는 이날 드라이버 샷 평균 327야드의 장타와 나흘간 그린 적중률 86%(공동 1위)의 아이언 샷을 자랑했다. 2019년 가을 무릎 부상 뒤 찾아온 긴 슬럼프를 끊어낸 켑카는 “솔직히 그동안 마음이 많이 어두웠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며 “트레이너·코치의 말을 듣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들에게 모든 공을 돌린다”고 말했다. 8승 중 메이저 승수가 4승인 ‘메이저 사냥꾼’으로서 4월 마스터스 우승 기대도 한껏 높였다.
이날 켑카는 17번 홀(파4)에서 32야드 칩인 이글로 2타 차로 달아나면서 승리를 예약했다. 이 샷이 안 들어갔다면 이경훈(30)이 연장에 갈 수 있었다. 3타 차 공동 3위에서 출발한 이경훈은 버디 4개와 보기 하나로 3타를 줄인 끝에 최종 18언더파로 1타 차 공동 2위에 올랐다. 2018~2019시즌 PGA 투어 진출 이후 최고 성적(종전 최고는 공동 3위)이다. 지난 시즌 전체 상금으로 78만 1,000 달러를 벌었는데 이번에 공동 2위 상금으로 한 번에 64만 9,700 달러(약 7억 2,000만 원)를 챙겼다. 세계 랭킹도 263위에서 142위로 수직 상승했다.
15번 홀에서 공동 선두로 올라서고 17번 홀까지도 1타 차 추격전을 벌이는 등 이경훈은 나흘 내내 안정된 샷과 퍼트로 선두권을 지키면서 첫 우승이 머지않았음을 확인했다.
이경훈은 2015년 한국과 일본 투어에서 1승씩을 올린 뒤 이듬해 PGA 2부 투어에 뛰어들었다. 편안한 둥지를 박차고 “죽어도 미국에서 죽겠다는 마음으로 독하게 해보겠다”며 꿈을 좇아 떠난 그는 3년간 2부 투어 생활을 견뎌낸 뒤 PGA 투어 세 시즌째에 드디어 빛을 보고 있다. 살짝 홀을 빗나간 마지막 18번 홀(파4) 먼 거리 버디 퍼트에 미간을 찌푸린 이경훈은 “마지막 날 긴장도 했지만 재미있고 흥분도 됐다. 좋은 경험한 만큼 다음에도 비슷한 기회가 온다면 꼭 잡아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6타를 줄인 임성재가 19계단을 끌어올려 12언더파 공동 17위에 올랐고, 김시우는 7언더파 공동 50위, 안병훈은 6언더파 공동 53위로 마쳤다.
/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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