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현지 시간) 베어드에쿼티리서치는 논란이 되고 있는 게임스톱에 대한 보고서를 하나 냈다. 회사 측은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로 봐도 지금의 주가는 정당화될 수 없다”며 적정 주가를 13달러로 제시했다. 이날 종가(325달러)의 25분의 1에 불과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프라인 판매 중심의 전략을 단순히 온라인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해서 주가가 지금처럼 폭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베어드는 5% 확률밖에 안 되는 급격한 사업 전환과 그에 따른 성공이 가능하더라도 목표 주가는 125달러라고 선을 그었다.
공매도 세력과의 싸움이라는 명분으로 시작한 게임스톱 사태가 이제 개미들과 헤지펀드 사이의 버티기 전쟁으로 국면이 바뀌었다. 개인들은 매수세를 이어가며 공매도 세력을 압박하고 펀드들은 끝까지 있으면 결국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여기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일부 월가 투자자들이 끼어들면서 판이 커졌다.
월가 내에서는 개인 투자자들에 “심정적으로 동의한다”는 얘기가 있다. 특정 공매도에 개미들이 손실을 입은 사례도 많다는 것이다. 증시의 권력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이번 기회에 공매도의 문제점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게임스톱 사태는) 주목할 만한 순간”이라며 “마치 집 쇼파에 누워 TV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농구 경기를 보던 이들이 코트에 뛰어들어 르브론 제임스의 슛을 막아내고 앤서니 데이비스를 앞에 두고 무자비한 덩크슛을 날린 것과 같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 경제 방송 CNBC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보는 것은 단순한 것”이라며 “헤지펀드나 공매도는 월가를 지배한 적이 없다. 사실은 정반대”라고 강조했다. 바클레이스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주식에 투자하는 단기 헤지펀드의 수익률은 -3~9% 수준이다. 반면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연평균 수익률은 15%다. 개미 투자자들이 많이 쓰는 콜옵션과 달리 공매도는 이론상 손실이 무한대다.
실제 소셜미디어 레딧의 ‘월스트리트 베츠’ 토론방에 개미 투자자들이 나선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킨 월가에 대한 대응이라는 글도 올라오지만 사실 상당수 투자자들의 목표는 개인적인 것이다. 이미 적지 않은 개미들이 게임스톱을 통한 수익을 빚잔치에 쓰고 있다. 디트로이트에 사는 정보기술(IT) 전문가 덴 코박스는 최근 게임스톱 주식을 팔아 2,500달러의 현금을 마련했다. 7,000달러 규모의 카드 빚을 메우기 위해서다. 레딧의 한 이용자는 게임스톱 주식 매매로 학자금 대출 2만 3,000달러를 갚았다. 유튜버이자 초기 게임스톱 투자를 이끈 키스 질은 3,300만 달러의 수익을 냈는데 고향에 경주용 트랙이 딸린 집을 짓겠다고 했다. WSJ는 “일부 게임스톱 투자자들의 목표는 빚을 갚으려는 것”이라며 “이제는 언제 팔아치우느냐가 고민”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제2, 제3의 게임스톱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들 종목이 전체 증시의 건전성을 해치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불안 요소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투자 심리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많다. 시장에서는 게임스톱이 급등하면 버블 우려에 전체 증시가 하락하고 게임스톱이 하락하면 주요 지수가 오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게임스톱 사태 이후 꼬리가 몸통을 뒤흔드는 이른바 ‘왝더독(wag the dog)’과 같은 비정상적인 시장 상황이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CNBC는 “게임스톱과 AMC의 상승세를 지속시킬 흥분한 투자자들의 유입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들 종목의 단기 급등으로 인한 위험이 확산할 가능성은 낮지만 지난 주 S&P500을 3% 낮추는 역할을 한 것은 맞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조사에 나서고 정치권도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향후 증권 거래 방식의 일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예상도 있다. WSJ는 “다윗 대 골리앗의 이야기는 항상 과장된 것이었지만 월가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실제적인 것”이라며 “워싱턴에서도 몇몇 의원이 조사를 요구한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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