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재확산세가 꺾이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도 다소 완화됐지만 극장가를 덮친 새해 ‘북극 한파’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이에 극장가는 관객 급감의 원인이 감염병보다는 신작 가뭄에 있다고 판단하고 배급사들을 향한 읍소에 나섰다. 관객을 유인할 만한 대작 실종이 더 지속되면 극장이 버티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한국 영화계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심지어 극장 3사는 2월 개봉작에 관객 1인당 최대 1,000원의 지원금을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내놓았다. 코로나 19 피해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에서 사실상 마지막 카드를 뽑은 셈이다.
19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주말 3일 간 극장 관객 수는 7만9,878명에 그쳤다. 직전 주말 10만 명을 밑돈 데 이어 한 주 만에 8만 명 선마저 무너진 것이다. 관객 없는 극장가에서 한국 영화는 거의 실종 상태다. 주말 박스오피스 10위 내 작품 가운데 한국 영화는 ‘도굴’과 ‘조제’ 단 두 편. 심지어 이들 모두 재개봉작인 ‘화양연화(2000)’, ‘늑대와 춤을(1991)’ 보다 아래 순위였다.
이에 대해 한 상영관 관계자는 “한국 영화의 개봉 눈치 보기가 특히 심각하다”며 “(20일 개봉하는)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처럼 용기 있는 선택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실제 관객 유인 효과에 대한 기대가 컸던 주요 한국 영화들은 지난 연말 코로나 19 상황이 심각해지자 줄줄이 개봉을 잠정 연기한 후 아직 개봉 일정을 내놓지 않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서복’과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인생은 아름다워’ 등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리다가 개봉을 포기했고, SF영화 ‘승리호’는 결국 극장 대신 넷플릭스를 택했다. ‘영웅’, ‘모가디슈’ 등의 대작들도 당초 지난 해 개봉을 예정했지만 해를 넘겼다.
결국 극장가는 고육지책으로 2월 개봉작에 대한 지원금까지 내걸었다. 극장 3사가 직영점 관객 1인당 1,000원, 위탁점은 500원의 개봉 지원금을 한국 영화, 외국 영화 구분 없이 배급사에 내놓겠다는 것인데, 극장들이 지난 해 상영 중단 및 관객 급감 등으로 수천 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창무 한국영화상영관협회장은 “어려운 사정에서도 한국 영화시장 정상화를 위해 내린 결정”이라며 “이제는 배급 업계가 개봉으로 응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영화 시장은 제작, 투자, 배급, 상영이 그물 망처럼 촘촘히 얽힌 공생 관계이자 하나의 생태계”라며 “모든 이해 관계자가 한 뜻으로 영화 산업 위기 극복과 정상화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시기”라고 호소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영화 중에서는 오는 27일 이승원 감독의 ‘세자매’가 어렵게 새해 첫 주자로 나선다. 주연 배우 문소리는 지난 18일 사전 시사회에서 “너무 어려운 시국이라 극장에 오시라고 하기 난처하지만 우리 영화가 위로가 되고 이 시기를 지나가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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