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고(故) 신해철이 밴드와 함께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히는 그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인공지능(AI) 홀로그램이었다. 신해철이 무대에서 보여줬던 카리스마를 고스란히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살아있는 듯 움직이며 노래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세대를 초월한 감흥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신해철이 AI로 돌아온 무대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쏘스뮤직·플레디스 등 ‘빅히트 레이블즈’가 지난 31일 온라인으로 연 ‘2021 뉴 이어즈 이브 라이브’ 공연이었다. 그 동안 어깨부상으로 활동을 쉬었던 방탄소년단(BTS) 슈가가 먼저 헌정무대를 소개했다. 그는 신해철에 대해 “길 위의 수많은 정답과 오답, 숱한 밤을 잠들지 못하게 한 끝없는 질문들에 뜨겁고 치열하게 위로한 음악으로 아낌없이 답해 왔다”고 소개했다.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 말라고’(해에게서 소년에게), ‘지워지지 않는 질문의 답을 찾아 걷고 있다고’(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으니, 외로워 말라고’(나에게 쓰는 편지) 등 고인의 대표곡 가사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AI홀로그램으로 재현된 신해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홀로그램과 생전 공연했을 당시 음성을 합쳐 구현했다. 여기에 범주, 뉴이스트 백호, 여자친구 유주,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태현, 엔하이픈 희승 등 빅히트 레이블즈 소속 가수들의 목소리를 보태 대표곡 ‘그대에게’ 무대가 꾸며졌다. 중간에 남사당패와 북청사자놀음을 등장시키며 흥을 돋우기도 했다.
빅히트 소속 가수들과 국악인 장서윤씨는 신해철의 히트곡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의 프로토타입 버전을 선보였다. 이 노래에서도 중간에 화면을 통해 AI로 구현한 신해철이 나타나, 나지막한 목소리로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공연에서는 엔하이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여자친구, 뉴이스트, BTS 등 빅히트 레이블즈 소속 가수들이 차례대로 무대를 꾸몄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We‘ve connected)는 테마 아래 크게 네 가지 소주제를 통해 다채로운 무대를 담았다. 증강현실(AR), 확장현실(XR) 등 최첨단 기술도 도입했으며, 공연은 4K/HD의 선명한 고화질로 제공했다. 사전녹화로 진행했기 때문에 관객들과 소통할 수 없는 문제는 스튜디오에서 무대 뒤 아티스트를 만나는 ‘온라인 밋 앤 그릿(MEET&GREET)’ 콘텐츠로 메웠다.
공연의 마지막은 BTS의 몫이었다. 새해 카운트다운 직전에 히트곡 ‘다이너마이트’와 ‘베스트 오브 미’(Best of Me) 무대를 선보인 이들은 2021년이 시작되자 글로벌 아티스트들과 다양한 무대를 꾸몄다. 비록 이들과 직접 만나 공연할 수는 없었지만 온라인을 통해서나마 대형 스크린으로 함께 했다. EDM 뮤지션 스티브 아오키와는 ‘마이크 드롭’ 리믹스 버전을, 미국 뮤지션 할시(Halsey)와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공동으로 꾸몄다. 미국 뮤지션 라우브(Lauv)는 ‘메이크 잇 라이트’의 리믹스 버전을 연주하고 불렀다.
BTS는 마지막 곡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을 부르던 중 새해 인사를 남겼다. 정국은 “행복이 뭘까 생각해봤는데 무대에 올라 팬분들을 만나고 노래하는 게 행복인 것 같더라”며 “2021년에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RM은 “힘들었던 2020년도 지나갔는데, 내년 이 시간엔 우리가 부디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바라 본다”고 말했다. 멤버들은 공연이 끝나는 걸 아쉬워하며 “여러분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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