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다룬 만화 ‘풀’로 만화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미국 하비상 ‘최고의 국제 도서’ 주인공이 된 김금숙 작가의 신작이 출간됐다. ‘기다림’은 일제 강점기가 끝나자마자 또 한 번 우리 민족에게 큰 고통을 안겨줬던 한국전쟁의 비극을 이산가족 이야기로 풀어냈다.
만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귀자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함경남도 갑산의 방앗간 집 막내딸로 태어났다. 배를 곯진 않았으나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에는 다니지 못했다. 일본군이 처녀를 전쟁터로 끌고 간다는 소문을 듣고 열일곱에 서둘러 결혼한다. 그사이 일본은 패망했지만 북쪽에는 소련군이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남쪽엔 미군정이 들어선다. 38선 주변은 늘 혼란했다. 그런 중에도 아들, 딸을 낳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귀자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남쪽으로 피란을 떠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고, 둘째 딸만 등에 업은 채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올라 거제도로 가게 된다. 이후 재혼을 하고, 새 가정을 꾸리지만 피난 중 헤어진 아들의 얼굴과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 “엄마 금방 올게”를 70년이 지나도록 잊지 못한다.
작가가 이산가족 이야기를 다루게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작가는 20년 전 프랑스 파리에 거주할 당시 어머니로부터 피란 길에 친언니를 잃어버린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은 후 매번 이산가족 상봉 대상에서 낙첨된 후 슬퍼하던 어머니를 지켜보며 이산가족이라는 또 하나의 아픈 한국 현대사를 만화로 이야기해보기로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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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어머니는 물론 또 다른 이산가족들도 직접 만나 증언을 수집했다. 다른 역사 자료도 꼼꼼하게 수집해 작품을 구성했다.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힘 있는 붓 그림이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인다.
이번 작품 역시 전작 ‘풀’처럼 해외에서도 주목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이산가족 문제는 한국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현재 세계 각지에서 가족과 생이별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픔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1만8,0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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