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등 기술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모든 분야가 변화에 직면해 있다. 전문가들은 확실하게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체감하는 시기를 이르면 오는 2029년, 늦어도 2045년으로 예측한다. 변화의 충격은 정부 정책이나 기업 경영 등 경제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정책과 기업·대학교육 방식으로는 급변하는 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당장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국은 코딩수업 의무화 등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신(新)교육 패러다임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AI 면접이 민간 부문을 넘어 공공 부문까지 확산되는 등 채용시장 여건도 바뀌고 있다. 교육공학박사 출신으로 포스코 첫 여성 임원을 지낸 교육전문가 오인경 지식사회 대표를 7일 만나 앞으로 어떻게 정부 정책과 기업·대학교육 시스템이 변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교육 분야에 입문한 지 꽤 됐다.
△교육공학박사로는 처음으로 기업교육에 뛰어들었다. 큰 도전이었다. 입사 전에 삼성인력개발원에 미리 가보고 기업의 역동적인 모습에 반했던 것 같다. 삼성을 거쳐 크레듀와 포스코에서 임원으로 일했는데 이렇게 교육산업에 종사한 지 30년이 돼간다.
-교육환경이 많이 변했는데.
△어느 때보다 급변의 시기를 맞았는데도 정작 우리 교육은 60년 이상이나 된 산업화 시대의 산물을 답습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교육이 제시되지 못해 아쉽다. 지금은 학교·기업·사회 전반이 대량생산에 따른 부작용을 겪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신교육 패러다임에 대한 실질적이고 과감한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고 있나.
△여러 환경이 급변했지만 그중에서도 AI의 발전이 눈에 띈다. 지금 사람들은 AI 등장을 두려워한다. 자신을 대체할 기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AI와의 경쟁이 아닌 공존을 전제로 최적의 공존방식을 찾아야 한다. AI를 대체기술이 아닌 인간에게 새로운 차원의 일과 방식을 열어주는 활성화 기술로 보고 관련산업을 창조하는 사람이 결국 승리자가 된다. 과거 전기가 발명되자 인간은 정형화된 일을 기계에 맡기고 대신 머리로 하는 사무직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기술이 무엇을 더 잘하는지 연구해 새로운 일을 발명해야 한다.
-이게 가능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신기술이 사회 전반에 확산될지 아닐지는 기술 문제가 아닌 비기술적 문제다. 특히 정책과 교육이 중요하다. 과거 전통을 지키려는 자와 혁신가의 대립이 많았는데 포퓰리즘 정부는 기술 도입을 막았다. 하지만 산업혁명 당시 영국 정부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혁신가들의 손을 들어줘 어떤 유럽 국가들보다 먼저 산업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공유경제 확산 등으로 전통산업과 신산업이 갈등을 빚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바람직한지 정부는 영국 산업혁명 당시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나.
△좋은 정책이 있다 해도 기술인력이 모자라면 헛일이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교육에도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 관습적인 통념을 버리고 모든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려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정책과 교육이 조화를 이뤄야 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 가칭 AI에 초점을 맞춘 경제개발 정책을 설계하고 그에 맞는 연계 교육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게 정착되면 창조적 업종과 기업, 일하는 방식이 탄생한다. 이는 곧 취업률·임금인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요즘 채용시장에도 AI가 대세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채용은 비용과 에너지 낭비에다 불공정한 과정, 심사의 주관성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를 최소화할 대안으로 AI 면접이 확산되고 있는데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임은 분명하다. 다만 채용 시 응시자와 관련된 막대한 정보가 입수되는데 그 빅데이터를 누가 관리하느냐는 생각해볼 문제다. 입수된 데이터는 계속 빅데이터로 쌓이고 쓰인다. 이의 이용에 대해 누구에게 허락받아야 할지, 어떻게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할지에 대한 윤리적이고 경제적 관점의 대책이 필요하다.
-앞으로 취업시장은 어떻게 변할까.
△분명한 점은 앞으로 행정관리직은 축소된다는 것인데, 많은 청년이 아직도 그 분야를 목표로 하고 있다. AI 시대에 이들은 분명히 실직불안으로 고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지금 교육의 숙제는 청년들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제시하는 거다. AI 시대에 맞게 교육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수요자들의 마인드와 능력을 시대 흐름에 맞게 전환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미국에서 2만개의 직무를 분석해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것과 AI가 더 잘하는 일을 분석했는데 사무행정·생산·요리·소매업의 47%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 청년층이 선호하는 대기업·공무원들이 지속 가능할 수 없다는 얘기다. 현 정부 들어 공무원 채용을 해마다 늘리는데 과연 AI 시대에 맞는 결정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기계와 더불어 일하는 모델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 모든 직업의 최상위층에는 인간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AI의사가 진료를 하는데 분석 결과에 대한 최종 결정은 인간의사가 한다. 변호사도 자료조사는 AI가 하고 고객을 만나거나 변론하는 등의 일은 인간변호사가 하는 식이다. 지금까지는 인간 간의 배치에만 신경을 썼다면 앞으로는 인간을 어디에 배치하고 기계를 어디에 배치해야 효과적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생산성을 높이고 대량실직을 조기에 예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유리한 노동유형은 무엇인가.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창조성과 유연성을 발휘하는 지식노동자, 공감능력이 필요한 서비스 분야 등을 꼽을 수 있다. 정형화되고 단순반복적인 나머지 업무, 즉 기억·분석·적용업무 등은 AI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량생산 시대에 만들어진 과거의 일하는 방식에서 탈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급성장하는 기업의 비결은 아이디어와 스케일(idea+scale)로 요약할 수 있다. 즉 기존관념을 파괴하는 창의적 사고를 규모경제를 통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기업교육도 성과에서 성장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단기 성과를 강조하는 조직의 구성원은 회피본능이 강해지고 자신의 일을 ‘해치워야 할 것’으로 치부한다. 반면 성장은 ‘달성하고 싶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가능성에 도전하고 싶은 접근본능이 작용해 ‘하고 싶다’는 긍정적인 동기를 유발한다. 개인의 성장은 조직의 성장으로 확장되고 성장을 이룬 역량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성과가 가능해진다. 성과란 성장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 대응하려면 대학교육도 변해야 할 것 같다.
△현재 대학은 마치 비행기 안에서 안전하게 같은 콘텐츠를 제공해 같은 속도로 같은 목적지까지 가도록 하는 것 같은 교육이다. ‘집단’의 평균적 욕구를 ‘추정’해 표준화한 교육을 전달하고 있다. TED의 명연설자 켄 로빈슨은 학교가 창의력을 죽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이 아직 우리 교육 시스템을 이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변해야 한다. 이제는 기계와 소통하는 언어를 배워야 할 때다. 여기에 맞춰 대학 커리큘럼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
-시대 변화를 어떻게 반영해야 하나.
△지금은 직업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구성된 것이 사실이다. 기업체 입사시험 대비를 위해 모든 것을 외우는 방식이다. 입사 후에는 회사가 다시 역량 중심으로 새로 가르쳐야 하니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최고의 교육은 사회 패턴에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시대에 맞는 정신적 틀과 사고방식을 가지면 자연히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대학 교육의 변화가 절실한 이유다. 기술교육의 공통교양과목화 등을 통해 앞으로 인간이 AI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는 학과 또는 과목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미래에 어떤 직업이 새로 생기더라도 그에 적합한 인재를 공급할 수 있고 금방 적응이 가능해진다.
-정부가 할 일도 많을 듯하다.
△신기술 도입시기에 성장이 정체되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일반적이다. 이를 이겨내면 또 다른 도약이 기다리는 만큼 낙관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미 산업화 시대라는 격변을 경험했다. 여기에는 국민·기업만이 아니라 정부의 역할도 컸다. 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위대한 역사를 다시 만들려면 무엇보다 대대적인 교육투자가 필요하다. 그게 학위교육이어서는 안 된다. 재능을 발견하도록 지원하고 그들이 되고자 하는 것을 도움으로써 AI 시대에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로 키우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부친이 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아버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큰 방향을 설정해놓고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유연성 있게 수정해나가면 된다. 거시계획 없이 나가다가는 다 나가떨어진다. 기술인을 우대한 문화와 교육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유훈을 따라 지금까지 정부와 공공기관의 자문을 계속해오고 있다. 가장 보람있는 일 가운데 하나는 4년 전 개정된 공무원헌장 개정에 참여한 것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She is…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퍼듀대에서 교육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는 미국 보스턴대에서 취득했다. 교육공학박사로는 국내 최초로 포스코 여성 임원을 지냈다. 1992년부터 삼성인력개발원·크레듀·포스코그룹을 거치며 기업교육을 국내에 정착·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2004년부터 교육컨설팅 업체인 지식회사 대표를 맡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 개발방법론’ ‘내가 교육을 바꾼다’ ‘이제는 성과가 아닌 성장을 말하라’ 등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이제는 성장을 말하라’는 2019년 세종 도서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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