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 의원들에게 내년 4월까지 해외 출장은 ‘언감생심’이다. 내년 4월에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지역구 의원 선거운동도 도와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4분기부터 해외 출장에 나섰다가는 자칫 ‘일은 안하고 놀러다닌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예천군의회 의원들이 외유성 출장에 나섰다가 가이드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자 서울시의회는 지난 4월 ‘자정 노력 결의안’이 통과될 때까지 해외 출장을 보류했다가 7월부터 모든 상임위가 해외로 떠난 바 있다.
29일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각 상임위는 내년도 해외 출장 일정을 5월 이후로 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익명을 요구한 시의회 관계자는 “4월에 총선이 치러지니 선거 전까지는 여론 눈치를 보다가 그 이후에 떠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시의원들이 21대 총선 전에 국외 출장을 떠날 경우 더불어민주당이 여론의 화살을 집중적으로 맞게 된다. 서울시의회 총 의석 110석 중 102석이 민주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의 해외출장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총선 전 출장을 감행했다가는 시의원은 물론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에까지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 또 다른 시의회 관계자는 “지역위원장을 겸하는 국회의원이 시의원 공천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총선 때는 시의원도 덩달아 바빠진다”며 “4월까지 선거운동을 하고 5월부터 견학 등을 이유로 해외로 나가 쉬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올해 해외 출장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추진됐다. 지난 1월 예천군의회의 국외 출장 때 가이드 폭행 논란이 불거지면서 서울시의회 공무출장심사위원회는 지난 4월까지 교통위원회의 국외 출장 계획을 두 차례 반려했다. 같은 달 26일 신원철 서울시의회 의장 명의로 국외 출장 전 사전 계획·심의 결과·방문결과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예산 사용내역을 공개하며 성과보고회를 개최한다는 자정 노력 결의서가 발표됐다.
당시 시의회 안팎에서는 “사실상 올해 국외 출장은 물 건너 간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자정 노력 결의서가 발표된 후 9개 상임위는 모두 국외 출장을 떠났다. 서울시가 올해 국정감사 자료로 국회에 제출한 ‘2019년 공무국외연수 현황’에 따르면 상반기에 전무했던 서울시의회 공무국회활동은 하반기부터 재개돼 지난 7월 1일 환경수자원위원회를 시작으로 행정자치위원회·기획경제위원회가 잇따라 독일을 방문했다. 출장이 두 차례 반려된 교통위원회도 9월 말 미국 시찰을 마쳤다. 자정 노력 결의서가 발표될 때까지 국외 출장을 불허해 여론을 조성해 놓고서는 모두 해외로 떠난 것이다.
더구나 시의회는 출장을 다녀온 시의원이 국외 출장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시의원이 의정활동을 돕는 입법지원관에게 맡긴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출장을 다녀오지 않은 입법지원관을 통해 보고서가 ‘창작’되는 일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시의원은 “의정활동을 하면서 정책 수립을 위해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국외공무출장을 백안시해서는 안된다”면서도 “시의회 차원에서 심의를 철저히 해서 관광 등의 일정을 최소화하고 예산 사용내역도 철저히 검증하고 공개해서 해외 출장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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