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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만든 자동인형엔 AI 향한 인간의 욕망이…[진회숙의 음악으로 듣는 여행]

■스위스 뇌샤텔 예술사 박물관

1685년 루이14세 '낭트칙령' 폐지에

佛시계공 대거 이주한 스위스 뇌샤텔

250여년전 '자케 드로' 창업자가 만든

건반 연주하고 글 쓰는 태엽인형 전시

자동인형 올림피아에 대한 사랑 그린

오펜바흐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선

'사람과 닮은 기계'에 대한 꿈 엿보여

스와치 그룹의 시계브랜드 자케 드로의 창업자인 피에르 자케 드로가 만든 세 개의 자동인형.




스위스 뇌샤텔 예술사 박물관에 전시된 자동인형 이미지들.


스위스 뇌샤텔 예술사 박물관에 전시된 피에르 자케 드로의 자동인형 중 글씨 쓰는 인형.


스위스 뇌샤텔 예술사 박물관에 전시된 자동인형 이미지들.


스위스의 뇌샤텔이라는 도시는 서쪽으로는 쥐라 산맥을, 동·남쪽으로는 뇌샤텔 호수를 접하고 있는 스위스 서부 지역 교통의 요충지다. 오래 전부터 제네바와 함께 스위스 시계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는데, ‘뇌샤텔’이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새로운 성 (Neuchatel)‘이라는 뜻이다. 1685년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신교도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낭트 칙령을 폐지하면서 신교도가 대부분이던 프랑스 시계공들이 대거 뇌샤텔로 이주했다. 제네바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어를 쓰는데다가 마음 놓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뇌샤텔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뇌샤텔 호수를 끼고 난 아름다운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르네상스풍의 웅장한 건물이 나타난다. 뇌샤텔 예술사 박물관이다. 1885년에 문을 연 이 박물관에는 주로 뇌샤텔 지역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관련된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박물관에 아주 흥미로운 전시물이 있다. 스와치 그룹의 시계 브랜드 자케 드로의 창업자인 피에르 자케 드로가 만든 세 개의 자동인형(오토마통·Automaton)이 바로 그것이다. 1768년부터 1774년 사이에 제작된 이 자동인형들은 건반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며, 글씨를 쓴다. 꽃무늬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고개를 까딱이고, 숨을 쉬듯 가슴을 들썩인다.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한 화가 인형은 손에 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린다. 그러다가 가끔 입김으로 연필을 ‘훅’하고 불어 연필 끝에 묻은 검은 가루를 날려버리기도 한다. 글씨 쓰는 인형은 펜을 들고 잉크를 묻힌 다음 40여 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문장을 쓴다.

각각의 인형 속에는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장치가 들어있다. 이것들이 작동하면서 인형의 팔과 눈동자, 머리,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다. 글씨 쓰는 인형이 쓸 수 있는 몇 개의 문장 중에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도 있다. 그런데 때로는 이 인형이 변덕을 부려(물론 기계조작에 의한 것이지만)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라고 쓰기도 한다. 인형이 마치 철학자처럼 데카르트의 명제를 뒤집어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뇌샤텔 박물관의 자동인형 전시실에 가면 실제 인형과 함께 이 인형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보면 어떻게 태엽 장치 하나만 가지고 저렇게 정교한 동작을 구사할 수 있을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인공지능의 시대인 지금도 놀라운데 당대에는 어땠을까. 실제로 이 인형을 만든 피에르 자케 드로는 사탄이라는 누명을 쓰고 교수형을 당할 뻔했다고 한다. 인형을 모두 분해해 그 안에 있는 태엽과 톱니바퀴 등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장치를 보여주고 나서야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고 하니 당시에 이 인형이 얼마나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는지 알 수 있다.

자케 드로 이전에도 자동인형을 만든 사람이 있었다. 자크 드 보캉송이라는 프랑스 사람인데, 그는 1738년에 플루트를 연주하는 정교한 자동인형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이 인형은 플루트를 연주하는 인간의 손가락과 입술, 근육이 움직이는 원리를 그대로 적용해 만들어졌는데, 그 정교함에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피리를 부는 행위는 호흡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호흡을 뛰어넘는 기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호흡이 필요 없는 보캉송의 자동인형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피리를 불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기계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 내며 어느덧 숭배와 감탄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 이듬해 보캉송은 음식물을 먹으면 그 자리에서 소화시켜 배설까지 하는 기계 오리를 만들어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배설하는 오리’는 후대 사람들에 의해 진짜로 음식물을 소화시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여하튼 당대에는 이것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18세기에는 기계를 이용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보이는 자동인형이 크게 유행했다. 주목할 점은 이 시대가 인간의 이성(理性)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던 계몽주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이 우주와 세계는 물론 인간 자신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으며, 이성을 통해 사회와 자연이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신념에 힘입어 해부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과학과 기구 설계 기술이 발달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종종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었다. 과학자, 사기꾼, 발명가, 연금술사, 돌팔이 의사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옛날에 마술사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의 야망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 그리는 인형이 등장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기계 오리까지 나왔다. 체스를 두는 인형이 인간을 이겼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이런 인공지능은 당시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형이 정말 ‘생각을 하고’ 체스를 둔다고 믿는 사람도 있었다.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에는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자동인형이 등장한다. 주인공 호프만은 과학자 스팔란자니가 여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는다. 이때 스팔란자니는 호프만에게 과학이 모든 것 중 으뜸이라고 하면서 그에게 문학이니 예술이니 이런 것들을 집어치우고 과학자가 될 것을 권유한다. 이 장면은 계몽주의 시대 사람들의 과학에 대한 맹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스팔란자니는 그 과학을 바탕으로 인형을 만들고, 그 인형을 자신의 딸 올림피아라고 호프만에게 소개한다. 올림피아가 인형인 줄 모르는 호프만은 그 아름다운 자태에 한눈에 반해 버린다.

하지만 호프만의 친구 니콜라우스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고, 호프만 앞에서 올림피아가 인형임을 암시하는 노래 <올림피아를 보게나>를 부른다.

부채 뒤에 감추어진 그녀의 얼굴을 보게나

어떻게 고개를 까딱거리고 돌리는지

어떻게 에나멜 눈을 깜빡이는지

그리고 어설프게 말하는 것을

네. 네. 네. 그곳에서 멈추세요.

나는 아름다운 올림피아예요.

나는 저런 나무시계를 알고 있지

구리로 만든 수탉이 거기서 튀어나와

날개를 퍼덕이며 세 번 우는 것을 보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



꼬꼬댁. 꼬꼬댁. 그 수탉이

올림피아를 떠올리게 하네

그래. 아름다운 올림피아.

호프만은 안경을 쓰고 올림피아를 바라본다. 여기서 안경은 이성을 마비시키는 일종의 환각의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안경을 쓴 호프만은 올림피아의 매력에 더욱더 빠져든다. 안경이 올림피아의 실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윽고 파티가 시작되고, 올림피아가 등장한다. 그녀가 하프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인형의 아리아>로 유명한 <정원의 새들>이다.

정원에는 새들이

하늘에는 낮에도 빛나는 별들이

모든 것들이 소녀에게 말합니다.

사랑의 말을.

이 노래. 사랑스런 노래. 올림피아의 노래.

만물이 노래합니다.

그리고 한숨 쉽니다.

사랑으로 떨리는 그녀의 마음

그것은 매력적인 노래

올림피아의 노래

<인형의 아리아>는 뚝뚝 끊어지는 음형과 기계적인 콜로라추라 패시지를 통해 이것이 사람의 노래가 아닌 인형의 노래라는 것을 암시한다. 중간에 태엽이 풀려서 음이 내려가고 템포가 느려지면서 인형의 머리가 아래로 고꾸라지자 스팔란자니는 인형의 몸에 있는 태엽을 다시 감는다. 그러자 인형이 다시 일어나 예의 그 기계적인 목소리와 동작으로 노래를 계속한다. 대표적인 콜로라추라 아리아로 꼽히는 이 노래는 기계적인 가창력을 필요로 한다. 기계가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 역할을 맡은 소프라노는 아무리 높은 음이라도 흔들림 없이 정확하게 불러야 한다. 빠른 패시지에서도 한 음 한 음이 또렷하게 들리도록 해야 한다. 기계는 틀리는 법이 전혀 없으니까.

<인형의 노래>가 나오는 이 장면은 계몽시대의 광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스팔란자니는 자신이 만든 물건과 거의 미신적인 관계에 빠져 있다. 그는 기계장치에 올림피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람들에게 자기 딸이라고 소개한다. 호프만을 비롯한 사람들은 올림피아가 사람이라고 감쪽같이 속는다. 하지만 코펠리우스라는 사람이 올림피아를 산산조각내면서 인형의 진실이 드러난다. 호프만은 올림피아가 인형이라는 것을 알고 절망한다.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의 제1막은 호프만이 팔다리가 떨려 나간 올림피아를 보고 경악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뇌샤텔 예술사 박물관의 한쪽 구석에 서 있는 세 개의 자동인형은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에 대한 인간의 오랜 꿈을 보여준다. 낭만주의는 올림피아를 산산조각냄으로써 과학과 이성에 대한 계몽주의의 맹신을 비웃었지만, 자동인형을 향한 인간의 꿈은 결코 부서진 것이 아니었다. 올림피아에 대한 호프만의 사랑은 환상이 아니었다. 인류가 이제 자동인형을 넘어 인공지능의 시대로 가고 있지 않은가.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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