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시대가 끝난 것은 돌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듯, 석유시대의 종말도 석유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1970~1980년대 세계 석유시장을 호령했던 셰이크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 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고유가정책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 석유 아닌 다른 에너지로 전환되는 시기가 곧 닥쳐올 것으로 내다봤던 것이다. 야마니 장관의 경고에 비춰 오늘날 세계 에너지 판도는 어떠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쓰는 에너지 중 석유 비중은 야마니 장관이 활약하던 1970년 당시 50%에서 2017년 36%로 크게 줄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석유소비량 자체도 감소하고 있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기술혁신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OECD 국가들의 전력생산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2000년 15%에서 지금은 25%까지 올라왔다.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높은 수준이고, 석탄·천연가스를 턱밑까지 쫓아왔다. 석유시대의 종말까지는 아니지만, 석유 중심의 에너지 판도는 확실히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또 중국은 태양광 발전이 10년 새 700배, 풍력발전이 22배가 늘어 단기간에 세계 최대 재생에너지 국가로 변모했다. 중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OECD 국가 평균과 같은 25%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도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재생에너지를 크게 늘려왔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5.9%로 원전 발전 비중의 5배가 넘는다. 대만은 풍부한 풍력을 활용해 2035년까지 전체 발전용량의 30%에 해당하는 15.5기가와트(GW)의 해상풍력을 건설하겠다고 한다.
한국도 경제상황에 맞게 에너지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뤄왔다. 1956년 당인리 석유발전소를 시작으로 1965년 영월 석탄발전소, 1978년 고리 원자력 발전소 건설, 1986년 천연가스 도입 등 10년마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도입했고 각각 주력 에너지원의 하나로 자리매김해왔다. 적시성 있는 ‘에너지 전환’은 세계 6위 수출강국,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의 도약을 뒷받침했다.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에너지 전환을 시작했다. 2017년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필두로 재생에너지 3020 계획, 수소경제 로드맵, 에너지 효율혁신 전략 등 20~30년 앞을 내다보면서 굵직한 국가 에너지 대계를 마련했다. 지난 2년간 설치된 태양광은 과거 20년 치와 비슷하고, 과감한 감축계획이 예정돼 있는 석탄발전소는 미세먼지 시즌에 가동을 낮춰 미세먼지 배출량을 4분의1 이상 줄였다. 2017년 말 200대 남짓했던 수소차가 지금은 4,000대를 넘어서면서 수소경제 확산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에너지 전환이란 지속가능한 기술자원에 기반한 혁신을 통해 유한한 부존자원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야마니 장관은 에너지 전환이 가져올 변화의 시대를 앞두고 천연자원에만 의지하는 조국의 미래를 걱정했다. 부존자원은 부족하지만 기술을 보유한 우리는 오히려 발걸음을 가볍게 에너지 전환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무엇을 주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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