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예산을 심사해 늘리고 줄이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내년 예산안에 전국 경찰서의 시설을 신·증축하기 위해 약 765억원의 혈세를 더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513조원에 달하는 슈퍼 예산을 심의하는 예결위원들이 내년 주요 재정사업에 대해서는 대폭 삭감을 요청하면서 지역구 경찰서와 관련된 돈은 없던 예산도 만들라는 요구를 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활동 때 유무형의 도움을 주는 지역 경찰을 관리하기 위해 혈세를 쓴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서울경제가 예결안등조정소위원회 심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획재정부의 국유재산관리기금과 관련해 전국 경찰서 신·증축 및 토지·시설취득 등을 명목으로 59건, 764억8,900만원의 예산 증액이 요청된 것으로 파악됐다. 관련 예산은 올해 1,686억원 규모에서 내년 1,507억원으로 줄었는데 의원들이 되레 50%(765억원)를 더 늘리라고 요구한 것이다.
경찰서 관련 예산을 증액하는 데는 여야 의원 구분이 없었다. 충청도가 지역구인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덕흠·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충남지방경찰청 주차동을 증축해야 한다며 72억원의 증액을 요구했다. 경기도 부천시가 지역구인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경기남부경찰청 후생관 증축을 위해 32억8,600만원, 지상욱(서울 중구) 바른미래당 의원은 중부경찰서 을지지구대 노후화로 인한 증축이 필요하다며 20억원의 예산 증액을 요청했다. 전남 지역이 지역구인 서삼석 민주당 의원과 손금주 무소속 의원도 영암경찰서에 근무하는 인력 가운데 비연고자 50명이 관사 입주를 희망한다며 관사 신축을 위해 12억4,200만원의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의원들이 요구한 예산들은 대부분 기재부에 신청했다가 재원 마련과 시급성 등의 요건을 맞추지 못해 내년 예산안에 반영되지 못한 사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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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의원들이 ‘총선 대비용’ 경찰서 챙기기 쪽지 예산을 편성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경찰서 정보 라인을 통한 동향 수집과 선거운동 때 질서유지 및 민원, 고소·고발 건 취하 등 알게 모르게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며 “지역 경찰서의 숙원사업을 풀어줘서 나쁠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예결위 의원들은 “민원 기관으로서 정당한 의정활동”이라고 해명했다. 한 의원은 “지역구 지자체·경찰서 등에서 온 수많은 민원 중 정말 시급한데 아슬하게 내년 예산에 반영되지 못한 사업만 올렸다”며 “또 요구한다고 다 반영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재부가 의원들이 요구한 경찰서 신·증축 예산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결위원들은 내년 사상 최대인 60조원의 적자국채에 대한 이자상환 비용 약 1조6,000억원, 예비비 3조7,000억원 가운데 1조7,000억원 규모의 삭감은 물론 대외협력기금·저소득층장학사업 등도 각각 1,000억원 이상 줄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주요 사업 예산을 깎이지 않으려면 의원들이 내놓은 증액안의 일부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다 들어줄 수는 없지만 재원 여건과 시급성을 판단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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