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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피노체트式 신자유주의' 퇴진…칠레, 개헌 착수

군부집권기 경제성장 이끈 정책

시위대 '불평등 원흉'으로 지목

피녜라 정부 "헌법 고치겠다"

공공재 민영화 등 유사 정책 펴온

브라질 등 계승국들도 사태 주시

反정부 시위 이어질까 '전전긍긍'





“칠레 국민들의 항의 물결은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도입한 경제 모델로 야기된 물질적·정치적·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이다.” (가디언)

중남미 경제발전의 근간이 됐던 이른바 ‘피노체트식 신자유주의 모델’이 연일 이어지는 라틴아메리카 시위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존립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 최초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며 공공 부문 민영화 등 경제개혁을 단행해 한때 ‘라틴아메리카 경제의 기적’으로 칭송받던 칠레의 경제 모델이 이제는 경제 불평등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칠레의 성공 사례를 보고 앞다퉈 경제 모델을 받아들였던 중남미 국가들도 경제 불평등 문제에 직면하면서 경제정책 궤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피노체트 모델을 그대로 이어받은 브라질의 경제정책도 이번 남미 사태로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부정선거 논란으로 물러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전 대통령이 사퇴 이튿날인 11일(현지시간) 코차밤바 지역 은신처의 천막 아래 누워 있다. 그는 이날 멕시코 망명길에 올랐다. /코차밤바=AP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곤살로 블루멜 칠레 내무장관은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 및 여당 관계자들과 회동한 후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에 제정된 헌법을 개정하는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수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칠레 시위에서 시위대는 피노체트 시절의 헌법을 뜯어고치는 것을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시위대는 잦은 공공요금 인상, 낮은 임금과 연금, 높은 교육·의료비 부담, 고질적인 빈부격차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며 거리로 나왔고 피녜라 대통령이 내놓은 지하철 요금 인상 철회와 임금 인상 등의 유화책에도 시위를 멈추지 않았다. 미봉책에 불과한 유화책보다는 개헌을 통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시위대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군부독재 시절에 이뤄진 공공 서비스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이 칠레의 양극화를 부추겼다며, 그 토대가 되는 헌법부터 개정해야 한다고 시위대는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최근 칠레 여론조사기관 카뎀의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8%가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임지는 “칠레가 남미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국가로 보이게 만드는 ‘자유주의적’ 경제 모델은 고갈된 연금과 부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불평등한 사회 시스템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칠레 시민들은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칠레 정부의 개헌 결정에 대해 가디언은 “소득 불평등으로 악명이 높은 칠레가 피노체트 모델에서 탈바꿈해 복지국가의 기반을 마련할 기회를 갖게 됐다”며 “단지 수치만 증가하는 성장률이 아니라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남미 국가 중 가장 잘 사는 국가로 꼽히는 칠레는 상위 1%가 나라 전체의 33%에 달하는 부를 독점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불평등한 나라로 꼽힌다. 칠레의 경제 성장률은 성장세를 보이지만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1은 완전 불평등)는 0.48로 남미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편이다.

피노체트 경제 모델의 근원지인 칠레가 흔들리자 이를 받아들인 남미 국가들도 혼란에 빠졌다. 현재 남미에서 벌어지는 시위 대부분이 경제적 불평등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휘발유와 경유 보조금 폐지로 촉발된 에콰도르 시위와 개표 부정으로 시작된 볼리비아 시위 모두 근간은 불평등을 낳고 있는 경제정책과 이에 따른 정치권 불신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른 남미 국가들과 달리 대대적인 시위가 발생하지 않은 브라질 역시 이번 칠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칠레 시위가 피노체트 모델의 핵심인 공공 서비스 민영화에 대한 불만에서 출발하면서 비슷한 길을 걷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부도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우소나루 행정부의 파울루 게지스 경제장관은 정권 출범 전부터 칠레 경제 모델을 그대로 본딴 개혁 모델을 제시했다. 이른바 ‘시카고 학파’ 출신인 게지스 장관은 공공지출 축소, 연금·조세제도 개혁, 정부 소유 부동산 매각, 공기업 민영화 등 친시장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피노체트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1980년대 칠레에서 대학교수로 재직했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 역시 취임 이후 아르헨티나를 처음 방문하던 관례를 깨고 칠레를 먼저 찾아 “칠레를 모범국가로 삼겠다”고 밝혔다.

현재 브라질 내에서 민영화를 반대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칠레 사태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앞으로 상당한 반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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